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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as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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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lerievazieux (in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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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Busan CONNECTㅣBooth E-1
관수도 IV / Gazing Water IV

EM갤러리는 Art Busan 2026 특별전 CONNECT 섹션에서 무나씨 작가의 <관수도 IV>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천장에서 아래로 펼쳐지는 족자 형식의 〈관 / Gazing〉, 바닥에 놓인 병풍 형식의 〈수 / Water〉는 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채 서로를 마주하며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됩니다.

무나씨 작가는 감정을 이해하려는 일을 수면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에 비유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응시하는 일은 쉬워 보이지만, 실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도 합니다. 욕망과 결점까지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화면에는 거대한 존재의 형상이 등장합니다. 이 존재는 모든 결점을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오래되고 자애로운 내면의 스승이자 스스로를 이해하고 끌어안는 또다른 자아이기도 합니다.

EM Gallery presents Gazing Water IV by Moonassi in the CONNECT section of Art Busan 2026. The hanging scroll-format work Gazing, which unfolds downward from the ceiling, and the folding screen-format work Water, placed on the floor, face one another without being physically connected, together forming a single installation.

Moonassi compares the act of understanding emotions to gazing at one’s reflection on the surface of water. Looking directly at oneself as one truly is may seem simple, yet in reality it is nearly impossible. In the process of accepting even one’s desires and flaws as parts of oneself, the image of a vast being emerges within the work. This being is an ancient and compassionate inner teacher, capable of looking down upon every imperfection, while also representing another self that seeks to understand and embrace itself complet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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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hours ago


Art Busan CONNECTㅣBooth E-1
관수도 IV / Gazing Water IV

EM갤러리는 Art Busan 2026 특별전 CONNECT 섹션에서 무나씨 작가의 <관수도 IV>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천장에서 아래로 펼쳐지는 족자 형식의 〈관 / Gazing〉, 바닥에 놓인 병풍 형식의 〈수 / Water〉는 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채 서로를 마주하며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됩니다.

무나씨 작가는 감정을 이해하려는 일을 수면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에 비유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응시하는 일은 쉬워 보이지만, 실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도 합니다. 욕망과 결점까지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화면에는 거대한 존재의 형상이 등장합니다. 이 존재는 모든 결점을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오래되고 자애로운 내면의 스승이자 스스로를 이해하고 끌어안는 또다른 자아이기도 합니다.

EM Gallery presents Gazing Water IV by Moonassi in the CONNECT section of Art Busan 2026. The hanging scroll-format work Gazing, which unfolds downward from the ceiling, and the folding screen-format work Water, placed on the floor, face one another without being physically connected, together forming a single installation.

Moonassi compares the act of understanding emotions to gazing at one’s reflection on the surface of water. Looking directly at oneself as one truly is may seem simple, yet in reality it is nearly impossible. In the process of accepting even one’s desires and flaws as parts of oneself, the image of a vast being emerges within the work. This being is an ancient and compassionate inner teacher, capable of looking down upon every imperfection, while also representing another self that seeks to understand and embrace itself complet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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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5 hours ago

Art BusanㅣBooth B-5
Moonassi
은은 隱隱 In the Subtle Between

아트부산 2026가 시작되었습니다.
EM갤러리는 무나씨 작가의 솔로 부스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무나씨 작가는 감지되지만 뚜렷하게 포착되지 않는 의식의 영역을 탐구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의식의 상호작용을 늘 서로 엉켜있고 침범하고 뒤섞이는 상태로 보며 이를 세밀한 붓선들로 화면에 담아냅니다.

“붓질은 미세한 의식의 장, 의식 알갱이들의 흐름을 나타냅니다. 흐름이 모여 ‘나’라는 한 사람으로 당신의 눈에 띄게 됩니다. 그런 존재로서 나를 상상해 봅니다. 감각과 마음, 생각, 기억을 포괄하는 하나의 의식을 떠올려보며 그 의식의 다양한 양태를 그려보았습니다. “— 무나씨

EM Gallery is pleased to present a solo booth by Moonassi at Art Busan 2026.

Moonassi explores subtle realms of consciousness that are sensed yet never fully defined. Through layered gestures and fluid forms, the artist visualizes the intertwined interactions between individuals, moments where awareness overlaps, merges, and quietly transforms.

“My brushstrokes represent the subtle field of consciousness, the flow of particles of awareness. As these flows gather, they become visible to your eyes as a person called ‘me.’ I imagine myself as such a being. Envisioning a single consciousness that encompasses sensation, emotion, thought, and memory, I sought to portray its many different forms.” —Moonas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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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busan2026 #moonassi #EMgallery #무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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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ays ago

Art BusanㅣBooth B-5
Moonassi
은은 隱隱 In the Subtle Between

아트부산 2026가 시작되었습니다.
EM갤러리는 무나씨 작가의 솔로 부스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무나씨 작가는 감지되지만 뚜렷하게 포착되지 않는 의식의 영역을 탐구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의식의 상호작용을 늘 서로 엉켜있고 침범하고 뒤섞이는 상태로 보며 이를 세밀한 붓선들로 화면에 담아냅니다.

“붓질은 미세한 의식의 장, 의식 알갱이들의 흐름을 나타냅니다. 흐름이 모여 ‘나’라는 한 사람으로 당신의 눈에 띄게 됩니다. 그런 존재로서 나를 상상해 봅니다. 감각과 마음, 생각, 기억을 포괄하는 하나의 의식을 떠올려보며 그 의식의 다양한 양태를 그려보았습니다. “— 무나씨

EM Gallery is pleased to present a solo booth by Moonassi at Art Busan 2026.

Moonassi explores subtle realms of consciousness that are sensed yet never fully defined. Through layered gestures and fluid forms, the artist visualizes the intertwined interactions between individuals, moments where awareness overlaps, merges, and quietly transforms.

“My brushstrokes represent the subtle field of consciousness, the flow of particles of awareness. As these flows gather, they become visible to your eyes as a person called ‘me.’ I imagine myself as such a being. Envisioning a single consciousness that encompasses sensation, emotion, thought, and memory, I sought to portray its many different forms.” —Moonas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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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BusanㅣBooth B-5
Moonassi
은은 隱隱 In the Subtle Between

아트부산 2026가 시작되었습니다.
EM갤러리는 무나씨 작가의 솔로 부스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무나씨 작가는 감지되지만 뚜렷하게 포착되지 않는 의식의 영역을 탐구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의식의 상호작용을 늘 서로 엉켜있고 침범하고 뒤섞이는 상태로 보며 이를 세밀한 붓선들로 화면에 담아냅니다.

“붓질은 미세한 의식의 장, 의식 알갱이들의 흐름을 나타냅니다. 흐름이 모여 ‘나’라는 한 사람으로 당신의 눈에 띄게 됩니다. 그런 존재로서 나를 상상해 봅니다. 감각과 마음, 생각, 기억을 포괄하는 하나의 의식을 떠올려보며 그 의식의 다양한 양태를 그려보았습니다. “— 무나씨

EM Gallery is pleased to present a solo booth by Moonassi at Art Busan 2026.

Moonassi explores subtle realms of consciousness that are sensed yet never fully defined. Through layered gestures and fluid forms, the artist visualizes the intertwined interactions between individuals, moments where awareness overlaps, merges, and quietly transforms.

“My brushstrokes represent the subtle field of consciousness, the flow of particles of awareness. As these flows gather, they become visible to your eyes as a person called ‘me.’ I imagine myself as such a being. Envisioning a single consciousness that encompasses sensation, emotion, thought, and memory, I sought to portray its many different forms.” —Moonas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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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BusanㅣBooth B-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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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부산 2026가 시작되었습니다.
EM갤러리는 무나씨 작가의 솔로 부스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무나씨 작가는 감지되지만 뚜렷하게 포착되지 않는 의식의 영역을 탐구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의식의 상호작용을 늘 서로 엉켜있고 침범하고 뒤섞이는 상태로 보며 이를 세밀한 붓선들로 화면에 담아냅니다.

“붓질은 미세한 의식의 장, 의식 알갱이들의 흐름을 나타냅니다. 흐름이 모여 ‘나’라는 한 사람으로 당신의 눈에 띄게 됩니다. 그런 존재로서 나를 상상해 봅니다. 감각과 마음, 생각, 기억을 포괄하는 하나의 의식을 떠올려보며 그 의식의 다양한 양태를 그려보았습니다. “— 무나씨

EM Gallery is pleased to present a solo booth by Moonassi at Art Busan 2026.

Moonassi explores subtle realms of consciousness that are sensed yet never fully defined. Through layered gestures and fluid forms, the artist visualizes the intertwined interactions between individuals, moments where awareness overlaps, merges, and quietly transforms.

“My brushstrokes represent the subtle field of consciousness, the flow of particles of awareness. As these flows gather, they become visible to your eyes as a person called ‘me.’ I imagine myself as such a being. Envisioning a single consciousness that encompasses sensation, emotion, thought, and memory, I sought to portray its many different forms.” —Moonas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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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나씨 작가는 감지되지만 뚜렷하게 포착되지 않는 의식의 영역을 탐구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의식의 상호작용을 늘 서로 엉켜있고 침범하고 뒤섞이는 상태로 보며 이를 세밀한 붓선들로 화면에 담아냅니다.

“붓질은 미세한 의식의 장, 의식 알갱이들의 흐름을 나타냅니다. 흐름이 모여 ‘나’라는 한 사람으로 당신의 눈에 띄게 됩니다. 그런 존재로서 나를 상상해 봅니다. 감각과 마음, 생각, 기억을 포괄하는 하나의 의식을 떠올려보며 그 의식의 다양한 양태를 그려보았습니다. “— 무나씨

EM Gallery is pleased to present a solo booth by Moonassi at Art Busan 2026.

Moonassi explores subtle realms of consciousness that are sensed yet never fully defined. Through layered gestures and fluid forms, the artist visualizes the intertwined interactions between individuals, moments where awareness overlaps, merges, and quietly transforms.

“My brushstrokes represent the subtle field of consciousness, the flow of particles of awareness. As these flows gather, they become visible to your eyes as a person called ‘me.’ I imagine myself as such a being. Envisioning a single consciousness that encompasses sensation, emotion, thought, and memory, I sought to portray its many different forms.” —Moonas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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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부산 2026가 시작되었습니다.
EM갤러리는 무나씨 작가의 솔로 부스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무나씨 작가는 감지되지만 뚜렷하게 포착되지 않는 의식의 영역을 탐구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의식의 상호작용을 늘 서로 엉켜있고 침범하고 뒤섞이는 상태로 보며 이를 세밀한 붓선들로 화면에 담아냅니다.

“붓질은 미세한 의식의 장, 의식 알갱이들의 흐름을 나타냅니다. 흐름이 모여 ‘나’라는 한 사람으로 당신의 눈에 띄게 됩니다. 그런 존재로서 나를 상상해 봅니다. 감각과 마음, 생각, 기억을 포괄하는 하나의 의식을 떠올려보며 그 의식의 다양한 양태를 그려보았습니다. “— 무나씨

EM Gallery is pleased to present a solo booth by Moonassi at Art Busan 2026.

Moonassi explores subtle realms of consciousness that are sensed yet never fully defined. Through layered gestures and fluid forms, the artist visualizes the intertwined interactions between individuals, moments where awareness overlaps, merges, and quietly transforms.

“My brushstrokes represent the subtle field of consciousness, the flow of particles of awareness. As these flows gather, they become visible to your eyes as a person called ‘me.’ I imagine myself as such a being. Envisioning a single consciousness that encompasses sensation, emotion, thought, and memory, I sought to portray its many different forms.” —Moonas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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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BusanㅣBooth B-5
Moonassi
은은 隱隱 In the Subtle Between

EM 갤러리는 아트부산 2026에서 무나씨 작가의 솔로 부스를 선보입니다. 5개의 화판을 연결한 대형 작업 <은은/ In the Subtle Between>을 비롯한 신작들과 10폭 병풍 작업 <마음을 담아/ Sincerely>가 전시됩니다. 이번 작업에서 작가는 개별적인 감정 너머,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며 뒤섞이는 ‘의식의 영역’을 탐구합니다.

EM Gallery presents Moonassi’s solo booth at ART BUSAN 2026. The presentation features new works, including the large-scale piece <In the Subtle Between>, composed of five connected canvases, as well as a ten-panel folding screen work <Sincerely>. In this series, the artist explores the ‘realm of consciousness’ that moves and intertwines between people, beyond individual emotion.

Art Busan
Booth B-5
May 22-24, 2026
BEXCO Exhibition Center 1, Busan,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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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busan @moonothing #artbusan2026
#moonassi #무나씨 #EM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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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ays ago

더디지만 그래도 매일 새벽에 나와서 선을 긋고 있어요. 비록 아침이 곧 밝아오긴 할 테지만, 밤은 밤인지라 집중이 더 잘 되는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예전에도 새벽 세 시 네 시 다섯 시에 가장 그림을 많이 그렸던 것 같아요. 다른 게 있다면 그때는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못마땅해하며 여덟 시 아홉 시에 왠지 모를 패배감에 젖어 잠들곤 했는데, 이제는 아침부터 뿌듯한 성취감으로 시작한답니다. 규칙적으로 낮 시간에 작업하는 것도 꽤 오래 해봤지만, 아무래도 저는 밤이 좋아요. 대낮에는 왜 이리 산만한지 모르겠어요. 자꾸만 내가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보이고, 연락할 사람들이 생각나고,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떠올라서 그런가 봐요. 대부분 그런 생산적인 일들은 시각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무언가 눈에 띄면 그와 관련된 일들이 연이어 생각나기 마련이니까요. 당장 눈앞에 그려야 할 그림만 있는 편이 마음이 훨씬 편안하답니다. 아마 그래서 작은 전등만을 켜두고 작업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무언가 많은 것이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내 주변 세계의 많은 것들이 내가 바라보는 행위로 인해 가능태의 상태에서 하나의 상태로 결정되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래서 나로 인해 결정된 세계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이 늘어나는 것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나는 점점 더 분절되고 산만해지는 수밖에 없고요. 바람이 불어 마치 일렁이는 수면이 햇빛에 의해 수만갈래의 빛조각으로 쪼개어진 윤슬처럼, 나의 시선에 의해, 내 주변의 모든 사물이 조명되고 그곳에 가 닿는 나 역시 분절되고 산란하는 것과 같다고- 얘기하면 어떨까요?

한편, 새벽에 나는 오히려 관찰되는 상태가 되어버려요. 창밖으로는 쓸모없는 야산이 있을 뿐이어서 다행히 벌거벗은 나무들이나 이따금 먹이를 찾아 내려온 산짐승들만 나를 바라볼 수 있답니다. 나무와 벌레, 새와 고라니, 아니면 내 작업실의 온갖 기물들, 그런 것들이 나를 바라보는 것은 괜찮아요. 자연이 나를 바라보는 것은 안전한 느낌이 들어요. 농담처럼 얘기하지만 저는 칠흑같이 까만 밤에 숲속에서도 홀로 두렵지 않을 것 같답니다. 전체로서의 자연이, 우주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은, 누군가 노려보는 시선처럼 따가운 느낌이 아니라, 사방에서 나를 포대기로 감싸 안아주는 느낌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 안에서 나는 안도하고, 그와 비슷한 편재하는 관점으로 내면의 나를 무심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된답니다.

아무튼,낮의 시선은 외부의 바깥으로. 밤에 나의 시선은 내부의 안쪽을 향합니다. 수렴하고 뻗어나가는 이 시선의 호흡이,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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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onths ago

요가를 수련하다 보면 동작마다 시선을 어디에 두는지에 대한 지침이 있다. 그것을 드리쉬티라 한다. 코끝이나 손끝, 발끝, 천장 동작마다 보아야 하는 지향점이 각각 따로 있다. 한 발로 서 있거나 물구나무를 서 있을 때 고정된 한 점을 바라보는 일은 균형을 잡는 데에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된다. 발란스를 잘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지침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그것은 요가원의 다른 수련생들의 동작에 시선을 빼앗기거나 혹은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을 신경 쓴다거나 하여 정신이 산만해지지 않기 위한 목적이 더 클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게 요가원에는 거울이 없다.

처음 아내를 따라 요가원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은 요가원에 남자가 나 혼자면 어떡하지? 뻣뻣한 내 몸은, 내 뱃살은 어떻고? 하는 식의 것들이었는데, 생각해보면 다 외부적인 시선의 문제였다. 그런데 첫 수련부터 이미 그런 시선 따위는 신경 쓸 겨를조차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요가원에 가는 일이 편안해졌더랬다.

마치 각자 자신의 균형과 생장에 몰두한 자연을 바라볼때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고 흐뭇한 기분이 드는 것처럼, 요가원 수련생들의 모습도 그러하다. 특히 아쉬탕가 마이솔의 경우, 오롯이 자기 자신만의 호흡과 리듬에 몰두한 채, 마치 춤을 추듯 끊김없이 동작들을 수행해 나가는 수련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웅장한 풍경을 바라볼 때에나 느낄 수 있을 법한 그런 경외감마저 들게 된다.

나 자신에게 몰두할 수 있기까지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수행자들은 명상을 통해 거기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고, 노동자들은 숙련되고 반복적인 행위 속에서 무아지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의 경우는 붓질 속에서 그런 경험을 한다. 요가는 특별히 어려운 어떤 동작을 하지 않더라도 가만 서 있는 -사마스티티Samasthiti - 상태에서 몇 번의 깊은 호흡을 하는 것만으로도 처음엔 나의 몸으로, 나의 마음으로 금세 빠져들어 가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요가의 매력인 것 같다. 요가 얘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아무튼.

<내부의 안쪽의 이면으로>라는 그림 속 포우즈는, 특별히 요가의 동작을 염두해두고 그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고나서 보니 요가 자세 중, 받따-코나-아사나(Baddha Konasana) 라는 동작을 닮아있었다. 구부려 구속된다는 의미에 어울리게, 발가락을 양 손으로 꽉 움켜쥐고 이마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고개를 숙이는 동작이다. 그렇게 고개를 숙여 배꼽을 바라본다고 해서 내 마음이 보이는 것은 아닐테지만, 어떻게든 나 자신을 이해해기위해 몰두하는 태도를 그림으로 담아보고 싶었다.

🧘🏻그림은,

<내부의 안쪽의 이면으로 / into the innner inside>
193.9 x 130.3 cm, 한지에 먹과 아크릴, Acrylic and ink on Hanji, 2025

Photo © Junho Lee, SpaceK Seoul


2K
14
2 months ago

요가를 수련하다 보면 동작마다 시선을 어디에 두는지에 대한 지침이 있다. 그것을 드리쉬티라 한다. 코끝이나 손끝, 발끝, 천장 동작마다 보아야 하는 지향점이 각각 따로 있다. 한 발로 서 있거나 물구나무를 서 있을 때 고정된 한 점을 바라보는 일은 균형을 잡는 데에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된다. 발란스를 잘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지침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그것은 요가원의 다른 수련생들의 동작에 시선을 빼앗기거나 혹은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을 신경 쓴다거나 하여 정신이 산만해지지 않기 위한 목적이 더 클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게 요가원에는 거울이 없다.

처음 아내를 따라 요가원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은 요가원에 남자가 나 혼자면 어떡하지? 뻣뻣한 내 몸은, 내 뱃살은 어떻고? 하는 식의 것들이었는데, 생각해보면 다 외부적인 시선의 문제였다. 그런데 첫 수련부터 이미 그런 시선 따위는 신경 쓸 겨를조차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요가원에 가는 일이 편안해졌더랬다.

마치 각자 자신의 균형과 생장에 몰두한 자연을 바라볼때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고 흐뭇한 기분이 드는 것처럼, 요가원 수련생들의 모습도 그러하다. 특히 아쉬탕가 마이솔의 경우, 오롯이 자기 자신만의 호흡과 리듬에 몰두한 채, 마치 춤을 추듯 끊김없이 동작들을 수행해 나가는 수련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웅장한 풍경을 바라볼 때에나 느낄 수 있을 법한 그런 경외감마저 들게 된다.

나 자신에게 몰두할 수 있기까지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수행자들은 명상을 통해 거기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고, 노동자들은 숙련되고 반복적인 행위 속에서 무아지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의 경우는 붓질 속에서 그런 경험을 한다. 요가는 특별히 어려운 어떤 동작을 하지 않더라도 가만 서 있는 -사마스티티Samasthiti - 상태에서 몇 번의 깊은 호흡을 하는 것만으로도 처음엔 나의 몸으로, 나의 마음으로 금세 빠져들어 가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요가의 매력인 것 같다. 요가 얘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아무튼.

<내부의 안쪽의 이면으로>라는 그림 속 포우즈는, 특별히 요가의 동작을 염두해두고 그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고나서 보니 요가 자세 중, 받따-코나-아사나(Baddha Konasana) 라는 동작을 닮아있었다. 구부려 구속된다는 의미에 어울리게, 발가락을 양 손으로 꽉 움켜쥐고 이마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고개를 숙이는 동작이다. 그렇게 고개를 숙여 배꼽을 바라본다고 해서 내 마음이 보이는 것은 아닐테지만, 어떻게든 나 자신을 이해해기위해 몰두하는 태도를 그림으로 담아보고 싶었다.

🧘🏻그림은,

<내부의 안쪽의 이면으로 / into the innner inside>
193.9 x 130.3 cm, 한지에 먹과 아크릴, Acrylic and ink on Hanji, 2025

Photo © Junho Lee, SpaceK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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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onths ago

요가를 수련하다 보면 동작마다 시선을 어디에 두는지에 대한 지침이 있다. 그것을 드리쉬티라 한다. 코끝이나 손끝, 발끝, 천장 동작마다 보아야 하는 지향점이 각각 따로 있다. 한 발로 서 있거나 물구나무를 서 있을 때 고정된 한 점을 바라보는 일은 균형을 잡는 데에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된다. 발란스를 잘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지침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그것은 요가원의 다른 수련생들의 동작에 시선을 빼앗기거나 혹은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을 신경 쓴다거나 하여 정신이 산만해지지 않기 위한 목적이 더 클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게 요가원에는 거울이 없다.

처음 아내를 따라 요가원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은 요가원에 남자가 나 혼자면 어떡하지? 뻣뻣한 내 몸은, 내 뱃살은 어떻고? 하는 식의 것들이었는데, 생각해보면 다 외부적인 시선의 문제였다. 그런데 첫 수련부터 이미 그런 시선 따위는 신경 쓸 겨를조차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요가원에 가는 일이 편안해졌더랬다.

마치 각자 자신의 균형과 생장에 몰두한 자연을 바라볼때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고 흐뭇한 기분이 드는 것처럼, 요가원 수련생들의 모습도 그러하다. 특히 아쉬탕가 마이솔의 경우, 오롯이 자기 자신만의 호흡과 리듬에 몰두한 채, 마치 춤을 추듯 끊김없이 동작들을 수행해 나가는 수련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웅장한 풍경을 바라볼 때에나 느낄 수 있을 법한 그런 경외감마저 들게 된다.

나 자신에게 몰두할 수 있기까지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수행자들은 명상을 통해 거기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고, 노동자들은 숙련되고 반복적인 행위 속에서 무아지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의 경우는 붓질 속에서 그런 경험을 한다. 요가는 특별히 어려운 어떤 동작을 하지 않더라도 가만 서 있는 -사마스티티Samasthiti - 상태에서 몇 번의 깊은 호흡을 하는 것만으로도 처음엔 나의 몸으로, 나의 마음으로 금세 빠져들어 가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요가의 매력인 것 같다. 요가 얘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아무튼.

<내부의 안쪽의 이면으로>라는 그림 속 포우즈는, 특별히 요가의 동작을 염두해두고 그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고나서 보니 요가 자세 중, 받따-코나-아사나(Baddha Konasana) 라는 동작을 닮아있었다. 구부려 구속된다는 의미에 어울리게, 발가락을 양 손으로 꽉 움켜쥐고 이마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고개를 숙이는 동작이다. 그렇게 고개를 숙여 배꼽을 바라본다고 해서 내 마음이 보이는 것은 아닐테지만, 어떻게든 나 자신을 이해해기위해 몰두하는 태도를 그림으로 담아보고 싶었다.

🧘🏻그림은,

<내부의 안쪽의 이면으로 / into the innner inside>
193.9 x 130.3 cm, 한지에 먹과 아크릴, Acrylic and ink on Hanji, 2025

Photo © Junho Lee, SpaceK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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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를 수련하다 보면 동작마다 시선을 어디에 두는지에 대한 지침이 있다. 그것을 드리쉬티라 한다. 코끝이나 손끝, 발끝, 천장 동작마다 보아야 하는 지향점이 각각 따로 있다. 한 발로 서 있거나 물구나무를 서 있을 때 고정된 한 점을 바라보는 일은 균형을 잡는 데에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된다. 발란스를 잘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지침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그것은 요가원의 다른 수련생들의 동작에 시선을 빼앗기거나 혹은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을 신경 쓴다거나 하여 정신이 산만해지지 않기 위한 목적이 더 클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게 요가원에는 거울이 없다.

처음 아내를 따라 요가원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은 요가원에 남자가 나 혼자면 어떡하지? 뻣뻣한 내 몸은, 내 뱃살은 어떻고? 하는 식의 것들이었는데, 생각해보면 다 외부적인 시선의 문제였다. 그런데 첫 수련부터 이미 그런 시선 따위는 신경 쓸 겨를조차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요가원에 가는 일이 편안해졌더랬다.

마치 각자 자신의 균형과 생장에 몰두한 자연을 바라볼때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고 흐뭇한 기분이 드는 것처럼, 요가원 수련생들의 모습도 그러하다. 특히 아쉬탕가 마이솔의 경우, 오롯이 자기 자신만의 호흡과 리듬에 몰두한 채, 마치 춤을 추듯 끊김없이 동작들을 수행해 나가는 수련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웅장한 풍경을 바라볼 때에나 느낄 수 있을 법한 그런 경외감마저 들게 된다.

나 자신에게 몰두할 수 있기까지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수행자들은 명상을 통해 거기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고, 노동자들은 숙련되고 반복적인 행위 속에서 무아지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의 경우는 붓질 속에서 그런 경험을 한다. 요가는 특별히 어려운 어떤 동작을 하지 않더라도 가만 서 있는 -사마스티티Samasthiti - 상태에서 몇 번의 깊은 호흡을 하는 것만으로도 처음엔 나의 몸으로, 나의 마음으로 금세 빠져들어 가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요가의 매력인 것 같다. 요가 얘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아무튼.

<내부의 안쪽의 이면으로>라는 그림 속 포우즈는, 특별히 요가의 동작을 염두해두고 그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고나서 보니 요가 자세 중, 받따-코나-아사나(Baddha Konasana) 라는 동작을 닮아있었다. 구부려 구속된다는 의미에 어울리게, 발가락을 양 손으로 꽉 움켜쥐고 이마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고개를 숙이는 동작이다. 그렇게 고개를 숙여 배꼽을 바라본다고 해서 내 마음이 보이는 것은 아닐테지만, 어떻게든 나 자신을 이해해기위해 몰두하는 태도를 그림으로 담아보고 싶었다.

🧘🏻그림은,

<내부의 안쪽의 이면으로 / into the innner inside>
193.9 x 130.3 cm, 한지에 먹과 아크릴, Acrylic and ink on Hanji, 2025

Photo © Junho Lee, SpaceK Seoul


2K
14
2 months ago

요가를 수련하다 보면 동작마다 시선을 어디에 두는지에 대한 지침이 있다. 그것을 드리쉬티라 한다. 코끝이나 손끝, 발끝, 천장 동작마다 보아야 하는 지향점이 각각 따로 있다. 한 발로 서 있거나 물구나무를 서 있을 때 고정된 한 점을 바라보는 일은 균형을 잡는 데에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된다. 발란스를 잘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지침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그것은 요가원의 다른 수련생들의 동작에 시선을 빼앗기거나 혹은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을 신경 쓴다거나 하여 정신이 산만해지지 않기 위한 목적이 더 클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게 요가원에는 거울이 없다.

처음 아내를 따라 요가원에 가기로 결심했을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은 요가원에 남자가 나 혼자면 어떡하지? 뻣뻣한 내 몸은, 내 뱃살은 어떻고? 하는 식의 것들이었는데, 생각해보면 다 외부적인 시선의 문제였다. 그런데 첫 수련부터 이미 그런 시선 따위는 신경 쓸 겨를조차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요가원에 가는 일이 편안해졌더랬다.

마치 각자 자신의 균형과 생장에 몰두한 자연을 바라볼때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고 흐뭇한 기분이 드는 것처럼, 요가원 수련생들의 모습도 그러하다. 특히 아쉬탕가 마이솔의 경우, 오롯이 자기 자신만의 호흡과 리듬에 몰두한 채, 마치 춤을 추듯 끊김없이 동작들을 수행해 나가는 수련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웅장한 풍경을 바라볼 때에나 느낄 수 있을 법한 그런 경외감마저 들게 된다.

나 자신에게 몰두할 수 있기까지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수행자들은 명상을 통해 거기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고, 노동자들은 숙련되고 반복적인 행위 속에서 무아지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의 경우는 붓질 속에서 그런 경험을 한다. 요가는 특별히 어려운 어떤 동작을 하지 않더라도 가만 서 있는 -사마스티티Samasthiti - 상태에서 몇 번의 깊은 호흡을 하는 것만으로도 처음엔 나의 몸으로, 나의 마음으로 금세 빠져들어 가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요가의 매력인 것 같다. 요가 얘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아무튼.

<내부의 안쪽의 이면으로>라는 그림 속 포우즈는, 특별히 요가의 동작을 염두해두고 그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고나서 보니 요가 자세 중, 받따-코나-아사나(Baddha Konasana) 라는 동작을 닮아있었다. 구부려 구속된다는 의미에 어울리게, 발가락을 양 손으로 꽉 움켜쥐고 이마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고개를 숙이는 동작이다. 그렇게 고개를 숙여 배꼽을 바라본다고 해서 내 마음이 보이는 것은 아닐테지만, 어떻게든 나 자신을 이해해기위해 몰두하는 태도를 그림으로 담아보고 싶었다.

🧘🏻그림은,

<내부의 안쪽의 이면으로 / into the innner inside>
193.9 x 130.3 cm, 한지에 먹과 아크릴, Acrylic and ink on Hanji, 2025

Photo © Junho Lee, SpaceK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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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2 months ago


<잘 빚은 마음> 그림에 부치는 글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마음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같다. 말할 수 없는 마음은 아직 이해되지 않은, 아직 잘 모르는 그런 마음이다. 마음은 꼭 하나의 상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은 감각과 기억,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여 일어나고, 종종 서로 정반대 방향을 향하는 의지로 뭉쳐져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모순된 의지는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오류가 난 컴퓨터 화면처럼 사람을 멍-하니 정지 시켜버린다. 좋은 것 두 가지가 동시에 떠오르는 상황은 비교적 편안한 고민에 속하지만, 그것 역시도 마음에 오래 품고 있으면 탈이 난다. 가장 힘든 경우는 아무래도, 어떤 선택을 해도 좋지 않은 결과를 낳지만, 그나마 나은, 차악次惡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럴 때에는 정말이지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생각의 지옥에 갇혀버리는 것과도 같으며, 잠도 제대로 이룰 수가 없는 상태가 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복잡다단한 그 다면체의 마음을, 질투의 감정, 분노의 감정, 탐욕스러운 마음, 수치스러운 기분, 등으로 부른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중에서도 아마도 가장 뭉뚱그려진 복합적인 감정의 정의가 아닐까 한다. 아무리 추상적일지라도 일단 잘 알려진 이름난 감정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정의 내릴 수 있게 되면, 그 마음이 아무리 복잡하고 모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다소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다. 유행가 가삿말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듯 노래하고 있다거나, 연속극 속 주인공이 내 마음을 딱 이해할 수 있게 읖조리는 것을 보게 되면, 한없이 위로받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렇게 언어로 설명될 때 비로소 해소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처음 사는 인생에서 처음 느끼는 감정들은 대게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일 경우가 더 많다. 나조차도 내가 왜 이러는지, 싶을 만큼 내가 원하는 것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 어떤 유행가 가사 속에도, 그 어떤 고전 명작 소설에도, DSM-5 정신질환통계편람에도, 내 마음과 꼭 같은 마음은 어디에도 설명되어 있지 않다. 내 마음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때, 아마 그것만큼 당황스럽고, 공포스럽고 고독한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채집한 다양한 감각과 기억, 옳고 그른 사실과 느낌들, 그런 것들을 잘 골라내어 요리하듯 따로 잘 다듬고 찌고 익혀, 하나의 종합적이고 맛깔나는 언어로 빚어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잘 빚어내어 스스로에게 뽐내듯 설명할 수 있으면 비로소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작품은
<잘 빚은 마음 / Brewed mind>
한지에 먹과 아크릴 / Acrylic and ink on Hanji,
260.6 x 193.9 cm, 2025

Photo © Junho Lee, SpaceK Seoul


1.8K
11
3 months ago

<잘 빚은 마음> 그림에 부치는 글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마음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같다. 말할 수 없는 마음은 아직 이해되지 않은, 아직 잘 모르는 그런 마음이다. 마음은 꼭 하나의 상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은 감각과 기억,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여 일어나고, 종종 서로 정반대 방향을 향하는 의지로 뭉쳐져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모순된 의지는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오류가 난 컴퓨터 화면처럼 사람을 멍-하니 정지 시켜버린다. 좋은 것 두 가지가 동시에 떠오르는 상황은 비교적 편안한 고민에 속하지만, 그것 역시도 마음에 오래 품고 있으면 탈이 난다. 가장 힘든 경우는 아무래도, 어떤 선택을 해도 좋지 않은 결과를 낳지만, 그나마 나은, 차악次惡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럴 때에는 정말이지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생각의 지옥에 갇혀버리는 것과도 같으며, 잠도 제대로 이룰 수가 없는 상태가 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복잡다단한 그 다면체의 마음을, 질투의 감정, 분노의 감정, 탐욕스러운 마음, 수치스러운 기분, 등으로 부른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중에서도 아마도 가장 뭉뚱그려진 복합적인 감정의 정의가 아닐까 한다. 아무리 추상적일지라도 일단 잘 알려진 이름난 감정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정의 내릴 수 있게 되면, 그 마음이 아무리 복잡하고 모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다소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다. 유행가 가삿말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듯 노래하고 있다거나, 연속극 속 주인공이 내 마음을 딱 이해할 수 있게 읖조리는 것을 보게 되면, 한없이 위로받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렇게 언어로 설명될 때 비로소 해소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처음 사는 인생에서 처음 느끼는 감정들은 대게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일 경우가 더 많다. 나조차도 내가 왜 이러는지, 싶을 만큼 내가 원하는 것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 어떤 유행가 가사 속에도, 그 어떤 고전 명작 소설에도, DSM-5 정신질환통계편람에도, 내 마음과 꼭 같은 마음은 어디에도 설명되어 있지 않다. 내 마음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때, 아마 그것만큼 당황스럽고, 공포스럽고 고독한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채집한 다양한 감각과 기억, 옳고 그른 사실과 느낌들, 그런 것들을 잘 골라내어 요리하듯 따로 잘 다듬고 찌고 익혀, 하나의 종합적이고 맛깔나는 언어로 빚어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잘 빚어내어 스스로에게 뽐내듯 설명할 수 있으면 비로소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작품은
<잘 빚은 마음 / Brewed mind>
한지에 먹과 아크릴 / Acrylic and ink on Hanji,
260.6 x 193.9 cm, 2025

Photo © Junho Lee, SpaceK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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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onths ago

<잘 빚은 마음> 그림에 부치는 글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마음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같다. 말할 수 없는 마음은 아직 이해되지 않은, 아직 잘 모르는 그런 마음이다. 마음은 꼭 하나의 상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은 감각과 기억,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여 일어나고, 종종 서로 정반대 방향을 향하는 의지로 뭉쳐져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모순된 의지는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오류가 난 컴퓨터 화면처럼 사람을 멍-하니 정지 시켜버린다. 좋은 것 두 가지가 동시에 떠오르는 상황은 비교적 편안한 고민에 속하지만, 그것 역시도 마음에 오래 품고 있으면 탈이 난다. 가장 힘든 경우는 아무래도, 어떤 선택을 해도 좋지 않은 결과를 낳지만, 그나마 나은, 차악次惡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럴 때에는 정말이지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생각의 지옥에 갇혀버리는 것과도 같으며, 잠도 제대로 이룰 수가 없는 상태가 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복잡다단한 그 다면체의 마음을, 질투의 감정, 분노의 감정, 탐욕스러운 마음, 수치스러운 기분, 등으로 부른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중에서도 아마도 가장 뭉뚱그려진 복합적인 감정의 정의가 아닐까 한다. 아무리 추상적일지라도 일단 잘 알려진 이름난 감정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정의 내릴 수 있게 되면, 그 마음이 아무리 복잡하고 모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다소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다. 유행가 가삿말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듯 노래하고 있다거나, 연속극 속 주인공이 내 마음을 딱 이해할 수 있게 읖조리는 것을 보게 되면, 한없이 위로받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렇게 언어로 설명될 때 비로소 해소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처음 사는 인생에서 처음 느끼는 감정들은 대게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일 경우가 더 많다. 나조차도 내가 왜 이러는지, 싶을 만큼 내가 원하는 것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 어떤 유행가 가사 속에도, 그 어떤 고전 명작 소설에도, DSM-5 정신질환통계편람에도, 내 마음과 꼭 같은 마음은 어디에도 설명되어 있지 않다. 내 마음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때, 아마 그것만큼 당황스럽고, 공포스럽고 고독한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채집한 다양한 감각과 기억, 옳고 그른 사실과 느낌들, 그런 것들을 잘 골라내어 요리하듯 따로 잘 다듬고 찌고 익혀, 하나의 종합적이고 맛깔나는 언어로 빚어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잘 빚어내어 스스로에게 뽐내듯 설명할 수 있으면 비로소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작품은
<잘 빚은 마음 / Brewed mind>
한지에 먹과 아크릴 / Acrylic and ink on Hanji,
260.6 x 193.9 cm, 2025

Photo © Junho Lee, SpaceK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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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빚은 마음> 그림에 부치는 글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마음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같다. 말할 수 없는 마음은 아직 이해되지 않은, 아직 잘 모르는 그런 마음이다. 마음은 꼭 하나의 상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은 감각과 기억,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여 일어나고, 종종 서로 정반대 방향을 향하는 의지로 뭉쳐져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모순된 의지는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오류가 난 컴퓨터 화면처럼 사람을 멍-하니 정지 시켜버린다. 좋은 것 두 가지가 동시에 떠오르는 상황은 비교적 편안한 고민에 속하지만, 그것 역시도 마음에 오래 품고 있으면 탈이 난다. 가장 힘든 경우는 아무래도, 어떤 선택을 해도 좋지 않은 결과를 낳지만, 그나마 나은, 차악次惡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럴 때에는 정말이지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생각의 지옥에 갇혀버리는 것과도 같으며, 잠도 제대로 이룰 수가 없는 상태가 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복잡다단한 그 다면체의 마음을, 질투의 감정, 분노의 감정, 탐욕스러운 마음, 수치스러운 기분, 등으로 부른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중에서도 아마도 가장 뭉뚱그려진 복합적인 감정의 정의가 아닐까 한다. 아무리 추상적일지라도 일단 잘 알려진 이름난 감정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정의 내릴 수 있게 되면, 그 마음이 아무리 복잡하고 모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다소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다. 유행가 가삿말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듯 노래하고 있다거나, 연속극 속 주인공이 내 마음을 딱 이해할 수 있게 읖조리는 것을 보게 되면, 한없이 위로받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렇게 언어로 설명될 때 비로소 해소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처음 사는 인생에서 처음 느끼는 감정들은 대게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일 경우가 더 많다. 나조차도 내가 왜 이러는지, 싶을 만큼 내가 원하는 것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 어떤 유행가 가사 속에도, 그 어떤 고전 명작 소설에도, DSM-5 정신질환통계편람에도, 내 마음과 꼭 같은 마음은 어디에도 설명되어 있지 않다. 내 마음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때, 아마 그것만큼 당황스럽고, 공포스럽고 고독한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채집한 다양한 감각과 기억, 옳고 그른 사실과 느낌들, 그런 것들을 잘 골라내어 요리하듯 따로 잘 다듬고 찌고 익혀, 하나의 종합적이고 맛깔나는 언어로 빚어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잘 빚어내어 스스로에게 뽐내듯 설명할 수 있으면 비로소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작품은
<잘 빚은 마음 / Brewed mind>
한지에 먹과 아크릴 / Acrylic and ink on Hanji,
260.6 x 193.9 cm, 2025

Photo © Junho Lee, SpaceK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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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빚은 마음> 그림에 부치는 글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마음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같다. 말할 수 없는 마음은 아직 이해되지 않은, 아직 잘 모르는 그런 마음이다. 마음은 꼭 하나의 상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은 감각과 기억,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여 일어나고, 종종 서로 정반대 방향을 향하는 의지로 뭉쳐져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모순된 의지는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오류가 난 컴퓨터 화면처럼 사람을 멍-하니 정지 시켜버린다. 좋은 것 두 가지가 동시에 떠오르는 상황은 비교적 편안한 고민에 속하지만, 그것 역시도 마음에 오래 품고 있으면 탈이 난다. 가장 힘든 경우는 아무래도, 어떤 선택을 해도 좋지 않은 결과를 낳지만, 그나마 나은, 차악次惡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럴 때에는 정말이지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생각의 지옥에 갇혀버리는 것과도 같으며, 잠도 제대로 이룰 수가 없는 상태가 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복잡다단한 그 다면체의 마음을, 질투의 감정, 분노의 감정, 탐욕스러운 마음, 수치스러운 기분, 등으로 부른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중에서도 아마도 가장 뭉뚱그려진 복합적인 감정의 정의가 아닐까 한다. 아무리 추상적일지라도 일단 잘 알려진 이름난 감정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정의 내릴 수 있게 되면, 그 마음이 아무리 복잡하고 모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다소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다. 유행가 가삿말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듯 노래하고 있다거나, 연속극 속 주인공이 내 마음을 딱 이해할 수 있게 읖조리는 것을 보게 되면, 한없이 위로받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렇게 언어로 설명될 때 비로소 해소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처음 사는 인생에서 처음 느끼는 감정들은 대게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일 경우가 더 많다. 나조차도 내가 왜 이러는지, 싶을 만큼 내가 원하는 것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 어떤 유행가 가사 속에도, 그 어떤 고전 명작 소설에도, DSM-5 정신질환통계편람에도, 내 마음과 꼭 같은 마음은 어디에도 설명되어 있지 않다. 내 마음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때, 아마 그것만큼 당황스럽고, 공포스럽고 고독한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채집한 다양한 감각과 기억, 옳고 그른 사실과 느낌들, 그런 것들을 잘 골라내어 요리하듯 따로 잘 다듬고 찌고 익혀, 하나의 종합적이고 맛깔나는 언어로 빚어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잘 빚어내어 스스로에게 뽐내듯 설명할 수 있으면 비로소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작품은
<잘 빚은 마음 / Brewed mind>
한지에 먹과 아크릴 / Acrylic and ink on Hanji,
260.6 x 193.9 cm, 2025

Photo © Junho Lee, SpaceK Seoul


1.8K
11
3 months ago

Notes on <I am it is here>, <I am there it is>

The two connected works depict two figures facing each other across the surface of water. They look at one another, but can only see images distorted by ripples.

The titles were inspired by the well-known phrase from the Upanishads, “tat tvam asi”, “that is you.” It is often understood as “you are Brahman,” or “the individual self and the origin of the universe are one.” As I see it, this idea can also be linked to Buddhist concepts of emptiness and dependent origination, to Heraclitus’s thoughts on change and logos, or to Spinoza’s pantheism. For a long time, I felt this sentence worked like a master key for understanding the world.
Rather than claiming to compress such a vast idea into two drawings, I would like to speak from my own experience.

From time to time, I talk with people who collect my work. Once, a collector asked me, “It’s probably better to frame your drawings, right?” We talked about non-reflective glass, and how even that still reflects. It was a simple comment, but it stayed with me. Looking at a drawing through glass suddenly felt similar to the way we look at — or try to understand — another person.

I try to see you as you are, but my own image always overlaps your face. To truly understand your mind, I may need to remove everything between us — my desires, intentions, and expectations. Yet if no surface existed between us at all, we would become a single being. I would only be you, and you would only be me. Our wills and choices would lose their boundaries.

Perhaps what we need is a strong, safe sheet of non-reflective glass, with only the minimum amount of reflection — enough to protect both you and me, so that we do not harm each other, dissolve into water, or fade under the sun.

나는 여기 이것 / I am it is here
193.9 x 130.3 cm , Ink on Hanji, 2025

나는 저기 그것 / I am there it is
193.9 x 130.3 cm , Ink on Hanji, 2025

너는 나의 반영 / You mirrored me
49.5 x 31.7 cm, Pigment liner, marker, and ink on paper, 2015

빔 / Beam
29.7 x 42 cm, Pigment liner, marker, and ink on paper, 2012

비애 / When it rains
42 x 29.7 cm, Pigment liner, marker, and ink on paper, 2012

Photo 1, 2, 3 © Junho Lee, SpaceK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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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 months ago


Notes on <I am it is here>, <I am there it is>

The two connected works depict two figures facing each other across the surface of water. They look at one another, but can only see images distorted by ripples.

The titles were inspired by the well-known phrase from the Upanishads, “tat tvam asi”, “that is you.” It is often understood as “you are Brahman,” or “the individual self and the origin of the universe are one.” As I see it, this idea can also be linked to Buddhist concepts of emptiness and dependent origination, to Heraclitus’s thoughts on change and logos, or to Spinoza’s pantheism. For a long time, I felt this sentence worked like a master key for understanding the world.
Rather than claiming to compress such a vast idea into two drawings, I would like to speak from my own experience.

From time to time, I talk with people who collect my work. Once, a collector asked me, “It’s probably better to frame your drawings, right?” We talked about non-reflective glass, and how even that still reflects. It was a simple comment, but it stayed with me. Looking at a drawing through glass suddenly felt similar to the way we look at — or try to understand — another person.

I try to see you as you are, but my own image always overlaps your face. To truly understand your mind, I may need to remove everything between us — my desires, intentions, and expectations. Yet if no surface existed between us at all, we would become a single being. I would only be you, and you would only be me. Our wills and choices would lose their boundaries.

Perhaps what we need is a strong, safe sheet of non-reflective glass, with only the minimum amount of reflection — enough to protect both you and me, so that we do not harm each other, dissolve into water, or fade under the sun.

나는 여기 이것 / I am it is here
193.9 x 130.3 cm , Ink on Hanji, 2025

나는 저기 그것 / I am there it is
193.9 x 130.3 cm , Ink on Hanji, 2025

너는 나의 반영 / You mirrored me
49.5 x 31.7 cm, Pigment liner, marker, and ink on paper, 2015

빔 / Beam
29.7 x 42 cm, Pigment liner, marker, and ink on paper, 2012

비애 / When it rains
42 x 29.7 cm, Pigment liner, marker, and ink on paper, 2012

Photo 1, 2, 3 © Junho Lee, SpaceK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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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on <I am it is here>, <I am there it is>

The two connected works depict two figures facing each other across the surface of water. They look at one another, but can only see images distorted by ripples.

The titles were inspired by the well-known phrase from the Upanishads, “tat tvam asi”, “that is you.” It is often understood as “you are Brahman,” or “the individual self and the origin of the universe are one.” As I see it, this idea can also be linked to Buddhist concepts of emptiness and dependent origination, to Heraclitus’s thoughts on change and logos, or to Spinoza’s pantheism. For a long time, I felt this sentence worked like a master key for understanding the world.
Rather than claiming to compress such a vast idea into two drawings, I would like to speak from my own experience.

From time to time, I talk with people who collect my work. Once, a collector asked me, “It’s probably better to frame your drawings, right?” We talked about non-reflective glass, and how even that still reflects. It was a simple comment, but it stayed with me. Looking at a drawing through glass suddenly felt similar to the way we look at — or try to understand — another person.

I try to see you as you are, but my own image always overlaps your face. To truly understand your mind, I may need to remove everything between us — my desires, intentions, and expectations. Yet if no surface existed between us at all, we would become a single being. I would only be you, and you would only be me. Our wills and choices would lose their boundaries.

Perhaps what we need is a strong, safe sheet of non-reflective glass, with only the minimum amount of reflection — enough to protect both you and me, so that we do not harm each other, dissolve into water, or fade under the sun.

나는 여기 이것 / I am it is here
193.9 x 130.3 cm , Ink on Hanji, 2025

나는 저기 그것 / I am there it is
193.9 x 130.3 cm , Ink on Hanji, 2025

너는 나의 반영 / You mirrored me
49.5 x 31.7 cm, Pigment liner, marker, and ink on paper, 2015

빔 / Beam
29.7 x 42 cm, Pigment liner, marker, and ink on paper, 2012

비애 / When it rains
42 x 29.7 cm, Pigment liner, marker, and ink on paper, 2012

Photo 1, 2, 3 © Junho Lee, SpaceK Seoul


1.5K
11
3 months ago

Notes on <I am it is here>, <I am there it is>

The two connected works depict two figures facing each other across the surface of water. They look at one another, but can only see images distorted by ripples.

The titles were inspired by the well-known phrase from the Upanishads, “tat tvam asi”, “that is you.” It is often understood as “you are Brahman,” or “the individual self and the origin of the universe are one.” As I see it, this idea can also be linked to Buddhist concepts of emptiness and dependent origination, to Heraclitus’s thoughts on change and logos, or to Spinoza’s pantheism. For a long time, I felt this sentence worked like a master key for understanding the world.
Rather than claiming to compress such a vast idea into two drawings, I would like to speak from my own experience.

From time to time, I talk with people who collect my work. Once, a collector asked me, “It’s probably better to frame your drawings, right?” We talked about non-reflective glass, and how even that still reflects. It was a simple comment, but it stayed with me. Looking at a drawing through glass suddenly felt similar to the way we look at — or try to understand — another person.

I try to see you as you are, but my own image always overlaps your face. To truly understand your mind, I may need to remove everything between us — my desires, intentions, and expectations. Yet if no surface existed between us at all, we would become a single being. I would only be you, and you would only be me. Our wills and choices would lose their boundaries.

Perhaps what we need is a strong, safe sheet of non-reflective glass, with only the minimum amount of reflection — enough to protect both you and me, so that we do not harm each other, dissolve into water, or fade under the sun.

나는 여기 이것 / I am it is here
193.9 x 130.3 cm , Ink on Hanji, 2025

나는 저기 그것 / I am there it is
193.9 x 130.3 cm , Ink on Hanji, 2025

너는 나의 반영 / You mirrored me
49.5 x 31.7 cm, Pigment liner, marker, and ink on paper, 2015

빔 / Beam
29.7 x 42 cm, Pigment liner, marker, and ink on paper, 2012

비애 / When it rains
42 x 29.7 cm, Pigment liner, marker, and ink on pape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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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wo connected works depict two figures facing each other across the surface of water. They look at one another, but can only see images distorted by ripples.

The titles were inspired by the well-known phrase from the Upanishads, “tat tvam asi”, “that is you.” It is often understood as “you are Brahman,” or “the individual self and the origin of the universe are one.” As I see it, this idea can also be linked to Buddhist concepts of emptiness and dependent origination, to Heraclitus’s thoughts on change and logos, or to Spinoza’s pantheism. For a long time, I felt this sentence worked like a master key for understanding the world.
Rather than claiming to compress such a vast idea into two drawings, I would like to speak from my own experience.

From time to time, I talk with people who collect my work. Once, a collector asked me, “It’s probably better to frame your drawings, right?” We talked about non-reflective glass, and how even that still reflects. It was a simple comment, but it stayed with me. Looking at a drawing through glass suddenly felt similar to the way we look at — or try to understand — another person.

I try to see you as you are, but my own image always overlaps your face. To truly understand your mind, I may need to remove everything between us — my desires, intentions, and expectations. Yet if no surface existed between us at all, we would become a single being. I would only be you, and you would only be me. Our wills and choices would lose their boundaries.

Perhaps what we need is a strong, safe sheet of non-reflective glass, with only the minimum amount of reflection — enough to protect both you and me, so that we do not harm each other, dissolve into water, or fade under the sun.

나는 여기 이것 / I am it is here
193.9 x 130.3 cm , Ink on Hanji, 2025

나는 저기 그것 / I am there it is
193.9 x 130.3 cm , Ink on Hanji, 2025

너는 나의 반영 / You mirrored me
49.5 x 31.7 cm, Pigment liner, marker, and ink on paper, 2015

빔 / Beam
29.7 x 42 cm, Pigment liner, marker, and ink on paper, 2012

비애 / When it rains
42 x 29.7 cm, Pigment liner, marker, and ink on paper, 2012

Photo 1, 2, 3 © Junho Lee, SpaceK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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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wo connected works depict two figures facing each other across the surface of water. They look at one another, but can only see images distorted by ripples.

The titles were inspired by the well-known phrase from the Upanishads, “tat tvam asi”, “that is you.” It is often understood as “you are Brahman,” or “the individual self and the origin of the universe are one.” As I see it, this idea can also be linked to Buddhist concepts of emptiness and dependent origination, to Heraclitus’s thoughts on change and logos, or to Spinoza’s pantheism. For a long time, I felt this sentence worked like a master key for understanding the world.
Rather than claiming to compress such a vast idea into two drawings, I would like to speak from my own experience.

From time to time, I talk with people who collect my work. Once, a collector asked me, “It’s probably better to frame your drawings, right?” We talked about non-reflective glass, and how even that still reflects. It was a simple comment, but it stayed with me. Looking at a drawing through glass suddenly felt similar to the way we look at — or try to understand — another person.

I try to see you as you are, but my own image always overlaps your face. To truly understand your mind, I may need to remove everything between us — my desires, intentions, and expectations. Yet if no surface existed between us at all, we would become a single being. I would only be you, and you would only be me. Our wills and choices would lose their boundaries.

Perhaps what we need is a strong, safe sheet of non-reflective glass, with only the minimum amount of reflection — enough to protect both you and me, so that we do not harm each other, dissolve into water, or fade under the sun.

나는 여기 이것 / I am it is here
193.9 x 130.3 cm , Ink on Hanji,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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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wo connected works depict two figures facing each other across the surface of water. They look at one another, but can only see images distorted by ripples.

The titles were inspired by the well-known phrase from the Upanishads, “tat tvam asi”, “that is you.” It is often understood as “you are Brahman,” or “the individual self and the origin of the universe are one.” As I see it, this idea can also be linked to Buddhist concepts of emptiness and dependent origination, to Heraclitus’s thoughts on change and logos, or to Spinoza’s pantheism. For a long time, I felt this sentence worked like a master key for understanding the world.
Rather than claiming to compress such a vast idea into two drawings, I would like to speak from my own experience.

From time to time, I talk with people who collect my work. Once, a collector asked me, “It’s probably better to frame your drawings, right?” We talked about non-reflective glass, and how even that still reflects. It was a simple comment, but it stayed with me. Looking at a drawing through glass suddenly felt similar to the way we look at — or try to understand — another person.

I try to see you as you are, but my own image always overlaps your face. To truly understand your mind, I may need to remove everything between us — my desires, intentions, and expectations. Yet if no surface existed between us at all, we would become a single being. I would only be you, and you would only be me. Our wills and choices would lose their boundaries.

Perhaps what we need is a strong, safe sheet of non-reflective glass, with only the minimum amount of reflection — enough to protect both you and me, so that we do not harm each other, dissolve into water, or fade under the sun.

나는 여기 이것 / I am it is here
193.9 x 130.3 cm , Ink on Hanji, 2025

나는 저기 그것 / I am there it is
193.9 x 130.3 cm , Ink on Hanji, 2025

너는 나의 반영 / You mirrored me
49.5 x 31.7 cm, Pigment liner, marker, and ink on paper, 2015

빔 / Beam
29.7 x 42 cm, Pigment liner, marker, and ink on paper, 2012

비애 / When it rains
42 x 29.7 cm, Pigment liner, marker, and ink on pape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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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 months ago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그림에 부치는 글

전시 제목 때문인지, 올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지독히도 추위를 싫어하지만, 따뜻한 옷을 잔뜩 껴입고 목도리를 둘둘 말아 눈과 코만 내놓고 콧속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은 좋아한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북극에서 내려온,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 때문도 있지만, 눈 내린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나는 서울의 골목 풍경을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남겨진 배배꼬인 전깃줄과 아무렇게나 세워진 형형색색의 간판들, 그리고 거리에 버려진 온갖 쓰레기들. 특히나 오뉴월 맑고 투명한 날씨에는 기분이 좋아진다기보다, 보기 싫은 것들이 더 잘 보여 눈이 아픈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 지경이다. 그래서 뿌옇게 흐린 날이나, 차라리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그래서 더 마음이 설레었다. 보고 싶지 않은 색깔들이 가려지고, 지저분한 전선이나, 간판들도 흰 눈에 가려지는 것이 통쾌하게 느껴졌달까.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침이든 새벽이든 설경을 구경하러 나가곤 했다. 모든 풍경이 백색으로 통일감 있게 덮이는 것이 좋았다. 그 풍경 속에 나라는 오점도 역시 파묻혀버리면 완벽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따뜻한 세계에 있는 것이 좋다.

눈도 그러하고, 안개도 그러하고, 내리는 비도 그러하고, 따뜻하고 차가운 대기가 물을 만나 만들어내는 대기-현상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아마도 신적인 힘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날씨가 아닐까.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 진동하는 모든 것 위로 공평하게 불가항력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런 거침없는 하늘의 힘에 늘 감탄하고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내가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그런 것이다. 거대하고 무차별적이며 불가항력적인, 모든 것에 연결되고 모든 곳에 존재하는 그런 이미지. 거기에 굳이 인드라니 제우스니, 어떤 신격이나 인격을 부여할 이유는 없다. 하늘은 그저 거대하게 텅 빈 풍경일 뿐. 나는 그런 빈 풍경의 무심함이 좋다. 그것은 하늘뿐 아니라 땅에 있는 개별 존재들, 돌과 나무, 흙과 물, 인간이 만든 사물들, 그런 것들에도 해당된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인간에게 관심이 없고 나의 시선에 사람들의 시선에 포섭되는 일도 없다. 그들은 무관심하게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역시 그것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그것들의 무심함을 좋아한다.

그렇게 무심한 자연의 작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설경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궁궐의 처마에도, 우리 집 베란다 난간에도, 길가에 늘어선 자동차에도, 뒷산 어딘가에 아무도 발로 차 본 적없는 돌멩이 위에도, 잎을 피워낸 적 없는 새로운 가지 끝에도 아슬하게 내려앉아 쌓이고 관계없는 듯 보이는 존재들을 이어준다. 그래서 나도 나의 연약한 두 인물을 그 눈 내린 풍경 속에 던져 놓았다. 그들은 추위를 잊고 눈 속에 파묻힌 채 기다린다. (부디 너무 춥지는 않기를) 나와 당신과 나무와 돌과 흙이 하나가 될 때까지, 우리 역시 이 세계에 무관심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너와, 우리도 너희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엎드려 있다. (얼어죽지 않는한) 경계는 사라지고 나도 너도 우리는 서로를 잊는다. 밤의 어둠 속에서 모두가 그러한 것처럼.

⛄️작품은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 The season we fade away>, 193.9 x 260.6 cm, ink on Korean paper, 2025

작품사진 제공: 이준호, 스페이스K


2.3K
25
3 months ago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그림에 부치는 글

전시 제목 때문인지, 올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지독히도 추위를 싫어하지만, 따뜻한 옷을 잔뜩 껴입고 목도리를 둘둘 말아 눈과 코만 내놓고 콧속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은 좋아한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북극에서 내려온,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 때문도 있지만, 눈 내린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나는 서울의 골목 풍경을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남겨진 배배꼬인 전깃줄과 아무렇게나 세워진 형형색색의 간판들, 그리고 거리에 버려진 온갖 쓰레기들. 특히나 오뉴월 맑고 투명한 날씨에는 기분이 좋아진다기보다, 보기 싫은 것들이 더 잘 보여 눈이 아픈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 지경이다. 그래서 뿌옇게 흐린 날이나, 차라리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그래서 더 마음이 설레었다. 보고 싶지 않은 색깔들이 가려지고, 지저분한 전선이나, 간판들도 흰 눈에 가려지는 것이 통쾌하게 느껴졌달까.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침이든 새벽이든 설경을 구경하러 나가곤 했다. 모든 풍경이 백색으로 통일감 있게 덮이는 것이 좋았다. 그 풍경 속에 나라는 오점도 역시 파묻혀버리면 완벽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따뜻한 세계에 있는 것이 좋다.

눈도 그러하고, 안개도 그러하고, 내리는 비도 그러하고, 따뜻하고 차가운 대기가 물을 만나 만들어내는 대기-현상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아마도 신적인 힘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날씨가 아닐까.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 진동하는 모든 것 위로 공평하게 불가항력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런 거침없는 하늘의 힘에 늘 감탄하고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내가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그런 것이다. 거대하고 무차별적이며 불가항력적인, 모든 것에 연결되고 모든 곳에 존재하는 그런 이미지. 거기에 굳이 인드라니 제우스니, 어떤 신격이나 인격을 부여할 이유는 없다. 하늘은 그저 거대하게 텅 빈 풍경일 뿐. 나는 그런 빈 풍경의 무심함이 좋다. 그것은 하늘뿐 아니라 땅에 있는 개별 존재들, 돌과 나무, 흙과 물, 인간이 만든 사물들, 그런 것들에도 해당된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인간에게 관심이 없고 나의 시선에 사람들의 시선에 포섭되는 일도 없다. 그들은 무관심하게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역시 그것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그것들의 무심함을 좋아한다.

그렇게 무심한 자연의 작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설경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궁궐의 처마에도, 우리 집 베란다 난간에도, 길가에 늘어선 자동차에도, 뒷산 어딘가에 아무도 발로 차 본 적없는 돌멩이 위에도, 잎을 피워낸 적 없는 새로운 가지 끝에도 아슬하게 내려앉아 쌓이고 관계없는 듯 보이는 존재들을 이어준다. 그래서 나도 나의 연약한 두 인물을 그 눈 내린 풍경 속에 던져 놓았다. 그들은 추위를 잊고 눈 속에 파묻힌 채 기다린다. (부디 너무 춥지는 않기를) 나와 당신과 나무와 돌과 흙이 하나가 될 때까지, 우리 역시 이 세계에 무관심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너와, 우리도 너희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엎드려 있다. (얼어죽지 않는한) 경계는 사라지고 나도 너도 우리는 서로를 잊는다. 밤의 어둠 속에서 모두가 그러한 것처럼.

⛄️작품은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 The season we fade away>, 193.9 x 260.6 cm, ink on Korean paper, 2025

작품사진 제공: 이준호, 스페이스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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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제목 때문인지, 올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지독히도 추위를 싫어하지만, 따뜻한 옷을 잔뜩 껴입고 목도리를 둘둘 말아 눈과 코만 내놓고 콧속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은 좋아한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북극에서 내려온,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 때문도 있지만, 눈 내린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나는 서울의 골목 풍경을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남겨진 배배꼬인 전깃줄과 아무렇게나 세워진 형형색색의 간판들, 그리고 거리에 버려진 온갖 쓰레기들. 특히나 오뉴월 맑고 투명한 날씨에는 기분이 좋아진다기보다, 보기 싫은 것들이 더 잘 보여 눈이 아픈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 지경이다. 그래서 뿌옇게 흐린 날이나, 차라리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그래서 더 마음이 설레었다. 보고 싶지 않은 색깔들이 가려지고, 지저분한 전선이나, 간판들도 흰 눈에 가려지는 것이 통쾌하게 느껴졌달까.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침이든 새벽이든 설경을 구경하러 나가곤 했다. 모든 풍경이 백색으로 통일감 있게 덮이는 것이 좋았다. 그 풍경 속에 나라는 오점도 역시 파묻혀버리면 완벽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따뜻한 세계에 있는 것이 좋다.

눈도 그러하고, 안개도 그러하고, 내리는 비도 그러하고, 따뜻하고 차가운 대기가 물을 만나 만들어내는 대기-현상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아마도 신적인 힘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날씨가 아닐까.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 진동하는 모든 것 위로 공평하게 불가항력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런 거침없는 하늘의 힘에 늘 감탄하고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내가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그런 것이다. 거대하고 무차별적이며 불가항력적인, 모든 것에 연결되고 모든 곳에 존재하는 그런 이미지. 거기에 굳이 인드라니 제우스니, 어떤 신격이나 인격을 부여할 이유는 없다. 하늘은 그저 거대하게 텅 빈 풍경일 뿐. 나는 그런 빈 풍경의 무심함이 좋다. 그것은 하늘뿐 아니라 땅에 있는 개별 존재들, 돌과 나무, 흙과 물, 인간이 만든 사물들, 그런 것들에도 해당된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인간에게 관심이 없고 나의 시선에 사람들의 시선에 포섭되는 일도 없다. 그들은 무관심하게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역시 그것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그것들의 무심함을 좋아한다.

그렇게 무심한 자연의 작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설경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궁궐의 처마에도, 우리 집 베란다 난간에도, 길가에 늘어선 자동차에도, 뒷산 어딘가에 아무도 발로 차 본 적없는 돌멩이 위에도, 잎을 피워낸 적 없는 새로운 가지 끝에도 아슬하게 내려앉아 쌓이고 관계없는 듯 보이는 존재들을 이어준다. 그래서 나도 나의 연약한 두 인물을 그 눈 내린 풍경 속에 던져 놓았다. 그들은 추위를 잊고 눈 속에 파묻힌 채 기다린다. (부디 너무 춥지는 않기를) 나와 당신과 나무와 돌과 흙이 하나가 될 때까지, 우리 역시 이 세계에 무관심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너와, 우리도 너희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엎드려 있다. (얼어죽지 않는한) 경계는 사라지고 나도 너도 우리는 서로를 잊는다. 밤의 어둠 속에서 모두가 그러한 것처럼.

⛄️작품은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 The season we fade away>, 193.9 x 260.6 cm, ink on Korean paper, 2025

작품사진 제공: 이준호, 스페이스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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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그림에 부치는 글

전시 제목 때문인지, 올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지독히도 추위를 싫어하지만, 따뜻한 옷을 잔뜩 껴입고 목도리를 둘둘 말아 눈과 코만 내놓고 콧속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은 좋아한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북극에서 내려온,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 때문도 있지만, 눈 내린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나는 서울의 골목 풍경을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남겨진 배배꼬인 전깃줄과 아무렇게나 세워진 형형색색의 간판들, 그리고 거리에 버려진 온갖 쓰레기들. 특히나 오뉴월 맑고 투명한 날씨에는 기분이 좋아진다기보다, 보기 싫은 것들이 더 잘 보여 눈이 아픈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 지경이다. 그래서 뿌옇게 흐린 날이나, 차라리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그래서 더 마음이 설레었다. 보고 싶지 않은 색깔들이 가려지고, 지저분한 전선이나, 간판들도 흰 눈에 가려지는 것이 통쾌하게 느껴졌달까.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침이든 새벽이든 설경을 구경하러 나가곤 했다. 모든 풍경이 백색으로 통일감 있게 덮이는 것이 좋았다. 그 풍경 속에 나라는 오점도 역시 파묻혀버리면 완벽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따뜻한 세계에 있는 것이 좋다.

눈도 그러하고, 안개도 그러하고, 내리는 비도 그러하고, 따뜻하고 차가운 대기가 물을 만나 만들어내는 대기-현상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아마도 신적인 힘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날씨가 아닐까.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 진동하는 모든 것 위로 공평하게 불가항력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런 거침없는 하늘의 힘에 늘 감탄하고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내가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그런 것이다. 거대하고 무차별적이며 불가항력적인, 모든 것에 연결되고 모든 곳에 존재하는 그런 이미지. 거기에 굳이 인드라니 제우스니, 어떤 신격이나 인격을 부여할 이유는 없다. 하늘은 그저 거대하게 텅 빈 풍경일 뿐. 나는 그런 빈 풍경의 무심함이 좋다. 그것은 하늘뿐 아니라 땅에 있는 개별 존재들, 돌과 나무, 흙과 물, 인간이 만든 사물들, 그런 것들에도 해당된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인간에게 관심이 없고 나의 시선에 사람들의 시선에 포섭되는 일도 없다. 그들은 무관심하게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역시 그것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그것들의 무심함을 좋아한다.

그렇게 무심한 자연의 작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설경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궁궐의 처마에도, 우리 집 베란다 난간에도, 길가에 늘어선 자동차에도, 뒷산 어딘가에 아무도 발로 차 본 적없는 돌멩이 위에도, 잎을 피워낸 적 없는 새로운 가지 끝에도 아슬하게 내려앉아 쌓이고 관계없는 듯 보이는 존재들을 이어준다. 그래서 나도 나의 연약한 두 인물을 그 눈 내린 풍경 속에 던져 놓았다. 그들은 추위를 잊고 눈 속에 파묻힌 채 기다린다. (부디 너무 춥지는 않기를) 나와 당신과 나무와 돌과 흙이 하나가 될 때까지, 우리 역시 이 세계에 무관심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너와, 우리도 너희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엎드려 있다. (얼어죽지 않는한) 경계는 사라지고 나도 너도 우리는 서로를 잊는다. 밤의 어둠 속에서 모두가 그러한 것처럼.

⛄️작품은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 The season we fade away>, 193.9 x 260.6 cm, ink on Korean paper, 2025

작품사진 제공: 이준호, 스페이스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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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onths ago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그림에 부치는 글

전시 제목 때문인지, 올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지독히도 추위를 싫어하지만, 따뜻한 옷을 잔뜩 껴입고 목도리를 둘둘 말아 눈과 코만 내놓고 콧속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은 좋아한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북극에서 내려온,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 때문도 있지만, 눈 내린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나는 서울의 골목 풍경을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남겨진 배배꼬인 전깃줄과 아무렇게나 세워진 형형색색의 간판들, 그리고 거리에 버려진 온갖 쓰레기들. 특히나 오뉴월 맑고 투명한 날씨에는 기분이 좋아진다기보다, 보기 싫은 것들이 더 잘 보여 눈이 아픈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 지경이다. 그래서 뿌옇게 흐린 날이나, 차라리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그래서 더 마음이 설레었다. 보고 싶지 않은 색깔들이 가려지고, 지저분한 전선이나, 간판들도 흰 눈에 가려지는 것이 통쾌하게 느껴졌달까.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침이든 새벽이든 설경을 구경하러 나가곤 했다. 모든 풍경이 백색으로 통일감 있게 덮이는 것이 좋았다. 그 풍경 속에 나라는 오점도 역시 파묻혀버리면 완벽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따뜻한 세계에 있는 것이 좋다.

눈도 그러하고, 안개도 그러하고, 내리는 비도 그러하고, 따뜻하고 차가운 대기가 물을 만나 만들어내는 대기-현상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아마도 신적인 힘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날씨가 아닐까.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 진동하는 모든 것 위로 공평하게 불가항력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런 거침없는 하늘의 힘에 늘 감탄하고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내가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그런 것이다. 거대하고 무차별적이며 불가항력적인, 모든 것에 연결되고 모든 곳에 존재하는 그런 이미지. 거기에 굳이 인드라니 제우스니, 어떤 신격이나 인격을 부여할 이유는 없다. 하늘은 그저 거대하게 텅 빈 풍경일 뿐. 나는 그런 빈 풍경의 무심함이 좋다. 그것은 하늘뿐 아니라 땅에 있는 개별 존재들, 돌과 나무, 흙과 물, 인간이 만든 사물들, 그런 것들에도 해당된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인간에게 관심이 없고 나의 시선에 사람들의 시선에 포섭되는 일도 없다. 그들은 무관심하게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역시 그것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그것들의 무심함을 좋아한다.

그렇게 무심한 자연의 작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설경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궁궐의 처마에도, 우리 집 베란다 난간에도, 길가에 늘어선 자동차에도, 뒷산 어딘가에 아무도 발로 차 본 적없는 돌멩이 위에도, 잎을 피워낸 적 없는 새로운 가지 끝에도 아슬하게 내려앉아 쌓이고 관계없는 듯 보이는 존재들을 이어준다. 그래서 나도 나의 연약한 두 인물을 그 눈 내린 풍경 속에 던져 놓았다. 그들은 추위를 잊고 눈 속에 파묻힌 채 기다린다. (부디 너무 춥지는 않기를) 나와 당신과 나무와 돌과 흙이 하나가 될 때까지, 우리 역시 이 세계에 무관심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너와, 우리도 너희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엎드려 있다. (얼어죽지 않는한) 경계는 사라지고 나도 너도 우리는 서로를 잊는다. 밤의 어둠 속에서 모두가 그러한 것처럼.

⛄️작품은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 The season we fade away>, 193.9 x 260.6 cm, ink on Korean paper, 2025

작품사진 제공: 이준호, 스페이스K


2.3K
25
3 months ago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그림에 부치는 글

전시 제목 때문인지, 올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지독히도 추위를 싫어하지만, 따뜻한 옷을 잔뜩 껴입고 목도리를 둘둘 말아 눈과 코만 내놓고 콧속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은 좋아한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북극에서 내려온,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 때문도 있지만, 눈 내린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나는 서울의 골목 풍경을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남겨진 배배꼬인 전깃줄과 아무렇게나 세워진 형형색색의 간판들, 그리고 거리에 버려진 온갖 쓰레기들. 특히나 오뉴월 맑고 투명한 날씨에는 기분이 좋아진다기보다, 보기 싫은 것들이 더 잘 보여 눈이 아픈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 지경이다. 그래서 뿌옇게 흐린 날이나, 차라리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그래서 더 마음이 설레었다. 보고 싶지 않은 색깔들이 가려지고, 지저분한 전선이나, 간판들도 흰 눈에 가려지는 것이 통쾌하게 느껴졌달까.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침이든 새벽이든 설경을 구경하러 나가곤 했다. 모든 풍경이 백색으로 통일감 있게 덮이는 것이 좋았다. 그 풍경 속에 나라는 오점도 역시 파묻혀버리면 완벽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따뜻한 세계에 있는 것이 좋다.

눈도 그러하고, 안개도 그러하고, 내리는 비도 그러하고, 따뜻하고 차가운 대기가 물을 만나 만들어내는 대기-현상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아마도 신적인 힘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날씨가 아닐까.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 진동하는 모든 것 위로 공평하게 불가항력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런 거침없는 하늘의 힘에 늘 감탄하고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내가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그런 것이다. 거대하고 무차별적이며 불가항력적인, 모든 것에 연결되고 모든 곳에 존재하는 그런 이미지. 거기에 굳이 인드라니 제우스니, 어떤 신격이나 인격을 부여할 이유는 없다. 하늘은 그저 거대하게 텅 빈 풍경일 뿐. 나는 그런 빈 풍경의 무심함이 좋다. 그것은 하늘뿐 아니라 땅에 있는 개별 존재들, 돌과 나무, 흙과 물, 인간이 만든 사물들, 그런 것들에도 해당된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인간에게 관심이 없고 나의 시선에 사람들의 시선에 포섭되는 일도 없다. 그들은 무관심하게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역시 그것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그것들의 무심함을 좋아한다.

그렇게 무심한 자연의 작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설경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궁궐의 처마에도, 우리 집 베란다 난간에도, 길가에 늘어선 자동차에도, 뒷산 어딘가에 아무도 발로 차 본 적없는 돌멩이 위에도, 잎을 피워낸 적 없는 새로운 가지 끝에도 아슬하게 내려앉아 쌓이고 관계없는 듯 보이는 존재들을 이어준다. 그래서 나도 나의 연약한 두 인물을 그 눈 내린 풍경 속에 던져 놓았다. 그들은 추위를 잊고 눈 속에 파묻힌 채 기다린다. (부디 너무 춥지는 않기를) 나와 당신과 나무와 돌과 흙이 하나가 될 때까지, 우리 역시 이 세계에 무관심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너와, 우리도 너희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엎드려 있다. (얼어죽지 않는한) 경계는 사라지고 나도 너도 우리는 서로를 잊는다. 밤의 어둠 속에서 모두가 그러한 것처럼.

⛄️작품은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 The season we fade away>, 193.9 x 260.6 cm, ink on Korean paper, 2025

작품사진 제공: 이준호, 스페이스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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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제목 때문인지, 올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지독히도 추위를 싫어하지만, 따뜻한 옷을 잔뜩 껴입고 목도리를 둘둘 말아 눈과 코만 내놓고 콧속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은 좋아한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북극에서 내려온,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 때문도 있지만, 눈 내린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나는 서울의 골목 풍경을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남겨진 배배꼬인 전깃줄과 아무렇게나 세워진 형형색색의 간판들, 그리고 거리에 버려진 온갖 쓰레기들. 특히나 오뉴월 맑고 투명한 날씨에는 기분이 좋아진다기보다, 보기 싫은 것들이 더 잘 보여 눈이 아픈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 지경이다. 그래서 뿌옇게 흐린 날이나, 차라리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그래서 더 마음이 설레었다. 보고 싶지 않은 색깔들이 가려지고, 지저분한 전선이나, 간판들도 흰 눈에 가려지는 것이 통쾌하게 느껴졌달까.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침이든 새벽이든 설경을 구경하러 나가곤 했다. 모든 풍경이 백색으로 통일감 있게 덮이는 것이 좋았다. 그 풍경 속에 나라는 오점도 역시 파묻혀버리면 완벽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따뜻한 세계에 있는 것이 좋다.

눈도 그러하고, 안개도 그러하고, 내리는 비도 그러하고, 따뜻하고 차가운 대기가 물을 만나 만들어내는 대기-현상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아마도 신적인 힘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날씨가 아닐까.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 진동하는 모든 것 위로 공평하게 불가항력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런 거침없는 하늘의 힘에 늘 감탄하고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내가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그런 것이다. 거대하고 무차별적이며 불가항력적인, 모든 것에 연결되고 모든 곳에 존재하는 그런 이미지. 거기에 굳이 인드라니 제우스니, 어떤 신격이나 인격을 부여할 이유는 없다. 하늘은 그저 거대하게 텅 빈 풍경일 뿐. 나는 그런 빈 풍경의 무심함이 좋다. 그것은 하늘뿐 아니라 땅에 있는 개별 존재들, 돌과 나무, 흙과 물, 인간이 만든 사물들, 그런 것들에도 해당된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인간에게 관심이 없고 나의 시선에 사람들의 시선에 포섭되는 일도 없다. 그들은 무관심하게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역시 그것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그것들의 무심함을 좋아한다.

그렇게 무심한 자연의 작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설경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궁궐의 처마에도, 우리 집 베란다 난간에도, 길가에 늘어선 자동차에도, 뒷산 어딘가에 아무도 발로 차 본 적없는 돌멩이 위에도, 잎을 피워낸 적 없는 새로운 가지 끝에도 아슬하게 내려앉아 쌓이고 관계없는 듯 보이는 존재들을 이어준다. 그래서 나도 나의 연약한 두 인물을 그 눈 내린 풍경 속에 던져 놓았다. 그들은 추위를 잊고 눈 속에 파묻힌 채 기다린다. (부디 너무 춥지는 않기를) 나와 당신과 나무와 돌과 흙이 하나가 될 때까지, 우리 역시 이 세계에 무관심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너와, 우리도 너희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엎드려 있다. (얼어죽지 않는한) 경계는 사라지고 나도 너도 우리는 서로를 잊는다. 밤의 어둠 속에서 모두가 그러한 것처럼.

⛄️작품은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 The season we fade away>, 193.9 x 260.6 cm, ink on Korean paper, 2025

작품사진 제공: 이준호, 스페이스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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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그림에 부치는 글

전시 제목 때문인지, 올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지독히도 추위를 싫어하지만, 따뜻한 옷을 잔뜩 껴입고 목도리를 둘둘 말아 눈과 코만 내놓고 콧속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은 좋아한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북극에서 내려온,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 때문도 있지만, 눈 내린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나는 서울의 골목 풍경을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남겨진 배배꼬인 전깃줄과 아무렇게나 세워진 형형색색의 간판들, 그리고 거리에 버려진 온갖 쓰레기들. 특히나 오뉴월 맑고 투명한 날씨에는 기분이 좋아진다기보다, 보기 싫은 것들이 더 잘 보여 눈이 아픈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 지경이다. 그래서 뿌옇게 흐린 날이나, 차라리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그래서 더 마음이 설레었다. 보고 싶지 않은 색깔들이 가려지고, 지저분한 전선이나, 간판들도 흰 눈에 가려지는 것이 통쾌하게 느껴졌달까.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침이든 새벽이든 설경을 구경하러 나가곤 했다. 모든 풍경이 백색으로 통일감 있게 덮이는 것이 좋았다. 그 풍경 속에 나라는 오점도 역시 파묻혀버리면 완벽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따뜻한 세계에 있는 것이 좋다.

눈도 그러하고, 안개도 그러하고, 내리는 비도 그러하고, 따뜻하고 차가운 대기가 물을 만나 만들어내는 대기-현상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아마도 신적인 힘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날씨가 아닐까.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 진동하는 모든 것 위로 공평하게 불가항력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런 거침없는 하늘의 힘에 늘 감탄하고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내가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그런 것이다. 거대하고 무차별적이며 불가항력적인, 모든 것에 연결되고 모든 곳에 존재하는 그런 이미지. 거기에 굳이 인드라니 제우스니, 어떤 신격이나 인격을 부여할 이유는 없다. 하늘은 그저 거대하게 텅 빈 풍경일 뿐. 나는 그런 빈 풍경의 무심함이 좋다. 그것은 하늘뿐 아니라 땅에 있는 개별 존재들, 돌과 나무, 흙과 물, 인간이 만든 사물들, 그런 것들에도 해당된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인간에게 관심이 없고 나의 시선에 사람들의 시선에 포섭되는 일도 없다. 그들은 무관심하게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역시 그것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그것들의 무심함을 좋아한다.

그렇게 무심한 자연의 작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설경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궁궐의 처마에도, 우리 집 베란다 난간에도, 길가에 늘어선 자동차에도, 뒷산 어딘가에 아무도 발로 차 본 적없는 돌멩이 위에도, 잎을 피워낸 적 없는 새로운 가지 끝에도 아슬하게 내려앉아 쌓이고 관계없는 듯 보이는 존재들을 이어준다. 그래서 나도 나의 연약한 두 인물을 그 눈 내린 풍경 속에 던져 놓았다. 그들은 추위를 잊고 눈 속에 파묻힌 채 기다린다. (부디 너무 춥지는 않기를) 나와 당신과 나무와 돌과 흙이 하나가 될 때까지, 우리 역시 이 세계에 무관심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너와, 우리도 너희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엎드려 있다. (얼어죽지 않는한) 경계는 사라지고 나도 너도 우리는 서로를 잊는다. 밤의 어둠 속에서 모두가 그러한 것처럼.

⛄️작품은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 The season we fade away>, 193.9 x 260.6 cm, ink on Korean paper, 2025

작품사진 제공: 이준호, 스페이스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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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그림에 부치는 글

전시 제목 때문인지, 올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지독히도 추위를 싫어하지만, 따뜻한 옷을 잔뜩 껴입고 목도리를 둘둘 말아 눈과 코만 내놓고 콧속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은 좋아한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북극에서 내려온,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 때문도 있지만, 눈 내린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나는 서울의 골목 풍경을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남겨진 배배꼬인 전깃줄과 아무렇게나 세워진 형형색색의 간판들, 그리고 거리에 버려진 온갖 쓰레기들. 특히나 오뉴월 맑고 투명한 날씨에는 기분이 좋아진다기보다, 보기 싫은 것들이 더 잘 보여 눈이 아픈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 지경이다. 그래서 뿌옇게 흐린 날이나, 차라리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그래서 더 마음이 설레었다. 보고 싶지 않은 색깔들이 가려지고, 지저분한 전선이나, 간판들도 흰 눈에 가려지는 것이 통쾌하게 느껴졌달까.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침이든 새벽이든 설경을 구경하러 나가곤 했다. 모든 풍경이 백색으로 통일감 있게 덮이는 것이 좋았다. 그 풍경 속에 나라는 오점도 역시 파묻혀버리면 완벽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따뜻한 세계에 있는 것이 좋다.

눈도 그러하고, 안개도 그러하고, 내리는 비도 그러하고, 따뜻하고 차가운 대기가 물을 만나 만들어내는 대기-현상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아마도 신적인 힘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날씨가 아닐까.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 진동하는 모든 것 위로 공평하게 불가항력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런 거침없는 하늘의 힘에 늘 감탄하고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내가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그런 것이다. 거대하고 무차별적이며 불가항력적인, 모든 것에 연결되고 모든 곳에 존재하는 그런 이미지. 거기에 굳이 인드라니 제우스니, 어떤 신격이나 인격을 부여할 이유는 없다. 하늘은 그저 거대하게 텅 빈 풍경일 뿐. 나는 그런 빈 풍경의 무심함이 좋다. 그것은 하늘뿐 아니라 땅에 있는 개별 존재들, 돌과 나무, 흙과 물, 인간이 만든 사물들, 그런 것들에도 해당된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인간에게 관심이 없고 나의 시선에 사람들의 시선에 포섭되는 일도 없다. 그들은 무관심하게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역시 그것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그것들의 무심함을 좋아한다.

그렇게 무심한 자연의 작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설경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궁궐의 처마에도, 우리 집 베란다 난간에도, 길가에 늘어선 자동차에도, 뒷산 어딘가에 아무도 발로 차 본 적없는 돌멩이 위에도, 잎을 피워낸 적 없는 새로운 가지 끝에도 아슬하게 내려앉아 쌓이고 관계없는 듯 보이는 존재들을 이어준다. 그래서 나도 나의 연약한 두 인물을 그 눈 내린 풍경 속에 던져 놓았다. 그들은 추위를 잊고 눈 속에 파묻힌 채 기다린다. (부디 너무 춥지는 않기를) 나와 당신과 나무와 돌과 흙이 하나가 될 때까지, 우리 역시 이 세계에 무관심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너와, 우리도 너희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엎드려 있다. (얼어죽지 않는한) 경계는 사라지고 나도 너도 우리는 서로를 잊는다. 밤의 어둠 속에서 모두가 그러한 것처럼.

⛄️작품은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 The season we fade away>, 193.9 x 260.6 cm, ink on Korean paper, 2025

작품사진 제공: 이준호, 스페이스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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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그림에 부치는 글

전시 제목 때문인지, 올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지독히도 추위를 싫어하지만, 따뜻한 옷을 잔뜩 껴입고 목도리를 둘둘 말아 눈과 코만 내놓고 콧속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은 좋아한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북극에서 내려온,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 때문도 있지만, 눈 내린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나는 서울의 골목 풍경을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남겨진 배배꼬인 전깃줄과 아무렇게나 세워진 형형색색의 간판들, 그리고 거리에 버려진 온갖 쓰레기들. 특히나 오뉴월 맑고 투명한 날씨에는 기분이 좋아진다기보다, 보기 싫은 것들이 더 잘 보여 눈이 아픈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 지경이다. 그래서 뿌옇게 흐린 날이나, 차라리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그래서 더 마음이 설레었다. 보고 싶지 않은 색깔들이 가려지고, 지저분한 전선이나, 간판들도 흰 눈에 가려지는 것이 통쾌하게 느껴졌달까.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침이든 새벽이든 설경을 구경하러 나가곤 했다. 모든 풍경이 백색으로 통일감 있게 덮이는 것이 좋았다. 그 풍경 속에 나라는 오점도 역시 파묻혀버리면 완벽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따뜻한 세계에 있는 것이 좋다.

눈도 그러하고, 안개도 그러하고, 내리는 비도 그러하고, 따뜻하고 차가운 대기가 물을 만나 만들어내는 대기-현상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아마도 신적인 힘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날씨가 아닐까.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 진동하는 모든 것 위로 공평하게 불가항력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런 거침없는 하늘의 힘에 늘 감탄하고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내가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그런 것이다. 거대하고 무차별적이며 불가항력적인, 모든 것에 연결되고 모든 곳에 존재하는 그런 이미지. 거기에 굳이 인드라니 제우스니, 어떤 신격이나 인격을 부여할 이유는 없다. 하늘은 그저 거대하게 텅 빈 풍경일 뿐. 나는 그런 빈 풍경의 무심함이 좋다. 그것은 하늘뿐 아니라 땅에 있는 개별 존재들, 돌과 나무, 흙과 물, 인간이 만든 사물들, 그런 것들에도 해당된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인간에게 관심이 없고 나의 시선에 사람들의 시선에 포섭되는 일도 없다. 그들은 무관심하게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역시 그것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그것들의 무심함을 좋아한다.

그렇게 무심한 자연의 작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설경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궁궐의 처마에도, 우리 집 베란다 난간에도, 길가에 늘어선 자동차에도, 뒷산 어딘가에 아무도 발로 차 본 적없는 돌멩이 위에도, 잎을 피워낸 적 없는 새로운 가지 끝에도 아슬하게 내려앉아 쌓이고 관계없는 듯 보이는 존재들을 이어준다. 그래서 나도 나의 연약한 두 인물을 그 눈 내린 풍경 속에 던져 놓았다. 그들은 추위를 잊고 눈 속에 파묻힌 채 기다린다. (부디 너무 춥지는 않기를) 나와 당신과 나무와 돌과 흙이 하나가 될 때까지, 우리 역시 이 세계에 무관심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너와, 우리도 너희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엎드려 있다. (얼어죽지 않는한) 경계는 사라지고 나도 너도 우리는 서로를 잊는다. 밤의 어둠 속에서 모두가 그러한 것처럼.

⛄️작품은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 The season we fade away>, 193.9 x 260.6 cm, ink on Korean paper, 2025

작품사진 제공: 이준호, 스페이스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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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제목 때문인지, 올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지독히도 추위를 싫어하지만, 따뜻한 옷을 잔뜩 껴입고 목도리를 둘둘 말아 눈과 코만 내놓고 콧속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은 좋아한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북극에서 내려온,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 때문도 있지만, 눈 내린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나는 서울의 골목 풍경을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남겨진 배배꼬인 전깃줄과 아무렇게나 세워진 형형색색의 간판들, 그리고 거리에 버려진 온갖 쓰레기들. 특히나 오뉴월 맑고 투명한 날씨에는 기분이 좋아진다기보다, 보기 싫은 것들이 더 잘 보여 눈이 아픈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 지경이다. 그래서 뿌옇게 흐린 날이나, 차라리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그래서 더 마음이 설레었다. 보고 싶지 않은 색깔들이 가려지고, 지저분한 전선이나, 간판들도 흰 눈에 가려지는 것이 통쾌하게 느껴졌달까.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침이든 새벽이든 설경을 구경하러 나가곤 했다. 모든 풍경이 백색으로 통일감 있게 덮이는 것이 좋았다. 그 풍경 속에 나라는 오점도 역시 파묻혀버리면 완벽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따뜻한 세계에 있는 것이 좋다.

눈도 그러하고, 안개도 그러하고, 내리는 비도 그러하고, 따뜻하고 차가운 대기가 물을 만나 만들어내는 대기-현상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아마도 신적인 힘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날씨가 아닐까.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 진동하는 모든 것 위로 공평하게 불가항력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런 거침없는 하늘의 힘에 늘 감탄하고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내가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그런 것이다. 거대하고 무차별적이며 불가항력적인, 모든 것에 연결되고 모든 곳에 존재하는 그런 이미지. 거기에 굳이 인드라니 제우스니, 어떤 신격이나 인격을 부여할 이유는 없다. 하늘은 그저 거대하게 텅 빈 풍경일 뿐. 나는 그런 빈 풍경의 무심함이 좋다. 그것은 하늘뿐 아니라 땅에 있는 개별 존재들, 돌과 나무, 흙과 물, 인간이 만든 사물들, 그런 것들에도 해당된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인간에게 관심이 없고 나의 시선에 사람들의 시선에 포섭되는 일도 없다. 그들은 무관심하게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역시 그것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그것들의 무심함을 좋아한다.

그렇게 무심한 자연의 작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설경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궁궐의 처마에도, 우리 집 베란다 난간에도, 길가에 늘어선 자동차에도, 뒷산 어딘가에 아무도 발로 차 본 적없는 돌멩이 위에도, 잎을 피워낸 적 없는 새로운 가지 끝에도 아슬하게 내려앉아 쌓이고 관계없는 듯 보이는 존재들을 이어준다. 그래서 나도 나의 연약한 두 인물을 그 눈 내린 풍경 속에 던져 놓았다. 그들은 추위를 잊고 눈 속에 파묻힌 채 기다린다. (부디 너무 춥지는 않기를) 나와 당신과 나무와 돌과 흙이 하나가 될 때까지, 우리 역시 이 세계에 무관심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너와, 우리도 너희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엎드려 있다. (얼어죽지 않는한) 경계는 사라지고 나도 너도 우리는 서로를 잊는다. 밤의 어둠 속에서 모두가 그러한 것처럼.

⛄️작품은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 The season we fade away>, 193.9 x 260.6 cm, ink on Korean paper, 2025

작품사진 제공: 이준호, 스페이스K


2.3K
25
3 months ago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그림에 부치는 글

전시 제목 때문인지, 올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지독히도 추위를 싫어하지만, 따뜻한 옷을 잔뜩 껴입고 목도리를 둘둘 말아 눈과 코만 내놓고 콧속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은 좋아한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북극에서 내려온,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 때문도 있지만, 눈 내린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나는 서울의 골목 풍경을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남겨진 배배꼬인 전깃줄과 아무렇게나 세워진 형형색색의 간판들, 그리고 거리에 버려진 온갖 쓰레기들. 특히나 오뉴월 맑고 투명한 날씨에는 기분이 좋아진다기보다, 보기 싫은 것들이 더 잘 보여 눈이 아픈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 지경이다. 그래서 뿌옇게 흐린 날이나, 차라리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그래서 더 마음이 설레었다. 보고 싶지 않은 색깔들이 가려지고, 지저분한 전선이나, 간판들도 흰 눈에 가려지는 것이 통쾌하게 느껴졌달까.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침이든 새벽이든 설경을 구경하러 나가곤 했다. 모든 풍경이 백색으로 통일감 있게 덮이는 것이 좋았다. 그 풍경 속에 나라는 오점도 역시 파묻혀버리면 완벽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따뜻한 세계에 있는 것이 좋다.

눈도 그러하고, 안개도 그러하고, 내리는 비도 그러하고, 따뜻하고 차가운 대기가 물을 만나 만들어내는 대기-현상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아마도 신적인 힘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날씨가 아닐까.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 진동하는 모든 것 위로 공평하게 불가항력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런 거침없는 하늘의 힘에 늘 감탄하고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내가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그런 것이다. 거대하고 무차별적이며 불가항력적인, 모든 것에 연결되고 모든 곳에 존재하는 그런 이미지. 거기에 굳이 인드라니 제우스니, 어떤 신격이나 인격을 부여할 이유는 없다. 하늘은 그저 거대하게 텅 빈 풍경일 뿐. 나는 그런 빈 풍경의 무심함이 좋다. 그것은 하늘뿐 아니라 땅에 있는 개별 존재들, 돌과 나무, 흙과 물, 인간이 만든 사물들, 그런 것들에도 해당된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인간에게 관심이 없고 나의 시선에 사람들의 시선에 포섭되는 일도 없다. 그들은 무관심하게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역시 그것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그것들의 무심함을 좋아한다.

그렇게 무심한 자연의 작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설경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궁궐의 처마에도, 우리 집 베란다 난간에도, 길가에 늘어선 자동차에도, 뒷산 어딘가에 아무도 발로 차 본 적없는 돌멩이 위에도, 잎을 피워낸 적 없는 새로운 가지 끝에도 아슬하게 내려앉아 쌓이고 관계없는 듯 보이는 존재들을 이어준다. 그래서 나도 나의 연약한 두 인물을 그 눈 내린 풍경 속에 던져 놓았다. 그들은 추위를 잊고 눈 속에 파묻힌 채 기다린다. (부디 너무 춥지는 않기를) 나와 당신과 나무와 돌과 흙이 하나가 될 때까지, 우리 역시 이 세계에 무관심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너와, 우리도 너희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엎드려 있다. (얼어죽지 않는한) 경계는 사라지고 나도 너도 우리는 서로를 잊는다. 밤의 어둠 속에서 모두가 그러한 것처럼.

⛄️작품은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 The season we fade away>, 193.9 x 260.6 cm, ink on Korean paper, 2025

작품사진 제공: 이준호, 스페이스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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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3 months ago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그림에 부치는 글

전시 제목 때문인지, 올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나는 지독히도 추위를 싫어하지만, 따뜻한 옷을 잔뜩 껴입고 목도리를 둘둘 말아 눈과 코만 내놓고 콧속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은 좋아한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북극에서 내려온,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 때문도 있지만, 눈 내린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나는 서울의 골목 풍경을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남겨진 배배꼬인 전깃줄과 아무렇게나 세워진 형형색색의 간판들, 그리고 거리에 버려진 온갖 쓰레기들. 특히나 오뉴월 맑고 투명한 날씨에는 기분이 좋아진다기보다, 보기 싫은 것들이 더 잘 보여 눈이 아픈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 지경이다. 그래서 뿌옇게 흐린 날이나, 차라리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그래서 더 마음이 설레었다. 보고 싶지 않은 색깔들이 가려지고, 지저분한 전선이나, 간판들도 흰 눈에 가려지는 것이 통쾌하게 느껴졌달까.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침이든 새벽이든 설경을 구경하러 나가곤 했다. 모든 풍경이 백색으로 통일감 있게 덮이는 것이 좋았다. 그 풍경 속에 나라는 오점도 역시 파묻혀버리면 완벽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따뜻한 세계에 있는 것이 좋다.

눈도 그러하고, 안개도 그러하고, 내리는 비도 그러하고, 따뜻하고 차가운 대기가 물을 만나 만들어내는 대기-현상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아마도 신적인 힘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건 날씨가 아닐까.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 진동하는 모든 것 위로 공평하게 불가항력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런 거침없는 하늘의 힘에 늘 감탄하고 영감을 얻었던 것 같다. 내가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그런 것이다. 거대하고 무차별적이며 불가항력적인, 모든 것에 연결되고 모든 곳에 존재하는 그런 이미지. 거기에 굳이 인드라니 제우스니, 어떤 신격이나 인격을 부여할 이유는 없다. 하늘은 그저 거대하게 텅 빈 풍경일 뿐. 나는 그런 빈 풍경의 무심함이 좋다. 그것은 하늘뿐 아니라 땅에 있는 개별 존재들, 돌과 나무, 흙과 물, 인간이 만든 사물들, 그런 것들에도 해당된다. 그런 것들은 나에게, 인간에게 관심이 없고 나의 시선에 사람들의 시선에 포섭되는 일도 없다. 그들은 무관심하게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역시 그것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그것들의 무심함을 좋아한다.

그렇게 무심한 자연의 작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설경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궁궐의 처마에도, 우리 집 베란다 난간에도, 길가에 늘어선 자동차에도, 뒷산 어딘가에 아무도 발로 차 본 적없는 돌멩이 위에도, 잎을 피워낸 적 없는 새로운 가지 끝에도 아슬하게 내려앉아 쌓이고 관계없는 듯 보이는 존재들을 이어준다. 그래서 나도 나의 연약한 두 인물을 그 눈 내린 풍경 속에 던져 놓았다. 그들은 추위를 잊고 눈 속에 파묻힌 채 기다린다. (부디 너무 춥지는 않기를) 나와 당신과 나무와 돌과 흙이 하나가 될 때까지, 우리 역시 이 세계에 무관심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너와, 우리도 너희들과 같아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엎드려 있다. (얼어죽지 않는한) 경계는 사라지고 나도 너도 우리는 서로를 잊는다. 밤의 어둠 속에서 모두가 그러한 것처럼.

⛄️작품은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 / The season we fade away>, 193.9 x 260.6 cm, ink on Korean paper, 2025

작품사진 제공: 이준호, 스페이스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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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3 months ago

전시가 막바지를 향해갑니다. 어느 전시나 준비하는 동안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관람객들이 내 그림에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정성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어떡하지, 계획한 작업을 완성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을 알면서도 ‘하겠습니다. 할게요.’ 하는 것은, 그래도 그 끝에 다다르면 무언가 소중한 깨달음이 남겠지-하는 기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나에게 동굴의 이미지란, 입구가 좁고 끝이 막다른 곳이어서 안전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그런 피난처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난처한 상황이 되면 곧잘 숨어버리는 그런 심리적 동굴이랄까요.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숨어있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로, 동굴은 나에게 은신처라기보다, 어릴 적 다락방 같은 느낌으로 변해온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어린 날의 나와의 연결성을 느끼고 나의 내면을 마주하며 자신을 위로하고 안전한 기분을 되찾아 다시 어른들이 계시는 따뜻한 안방으로, 거실로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그런 따뜻한 공간 말입니다.

전시를 하기로 결정한 지난가을 어느 날, 검게 칠해진 전시장에 들어서니, 마치 아직 탐사가 끝나지 않은 동굴에 들어선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시장 끝으로 다가갈수록 높아지는 천정은 감정을 고양되게 만들고 중간중간 새어 들어오는 빛은 공간에 신성하고 영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빈 전시장이어서 그랬는지 그와 동시에 막연한 설렘과 두려움마저 갖게 되더군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은 마치 내가 어떤 어려운 감정을 처음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자연스레 전시장의 작품 구성은 내가 새로운 감정을 만나 그것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경험에 대해, 그리고 비로소 해소되는 과정으로 꾸며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여러분들이 제 복잡한 마음 동굴 속에 들어와 저의 혼란한 감정의 통로를 지나, 그 끝에 다다라서는 무언가 해소되는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낭만적인 상상을 하였더랍니다.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해소되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부디 바쁘신 일과 중에 잠시나마 제가 마련한 동굴 속에서 머물며 한숨 푹 쉬었다가 가셨으면 좋겠다-하는 바램입니다.

전시는 2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작품은

<마음동굴 / My own cave>, 193.9 x 130.3 cm, Ink and acrylic on Korean paper, 2025

<홀로 / Black hole>, 42 x 68 cm, Ink on Korean paper, 2018

<동굴동굴 / You are (a) mine>, 42 x 29.7 cm, 종이에 펜, 마커, Pigment liner and marker on paper, 2011

마음동굴 사진: 이준호, 스페이스K 제공


2.4K
23
3 months ago

전시가 막바지를 향해갑니다. 어느 전시나 준비하는 동안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관람객들이 내 그림에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정성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어떡하지, 계획한 작업을 완성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을 알면서도 ‘하겠습니다. 할게요.’ 하는 것은, 그래도 그 끝에 다다르면 무언가 소중한 깨달음이 남겠지-하는 기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나에게 동굴의 이미지란, 입구가 좁고 끝이 막다른 곳이어서 안전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그런 피난처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난처한 상황이 되면 곧잘 숨어버리는 그런 심리적 동굴이랄까요.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숨어있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로, 동굴은 나에게 은신처라기보다, 어릴 적 다락방 같은 느낌으로 변해온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어린 날의 나와의 연결성을 느끼고 나의 내면을 마주하며 자신을 위로하고 안전한 기분을 되찾아 다시 어른들이 계시는 따뜻한 안방으로, 거실로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그런 따뜻한 공간 말입니다.

전시를 하기로 결정한 지난가을 어느 날, 검게 칠해진 전시장에 들어서니, 마치 아직 탐사가 끝나지 않은 동굴에 들어선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시장 끝으로 다가갈수록 높아지는 천정은 감정을 고양되게 만들고 중간중간 새어 들어오는 빛은 공간에 신성하고 영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빈 전시장이어서 그랬는지 그와 동시에 막연한 설렘과 두려움마저 갖게 되더군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은 마치 내가 어떤 어려운 감정을 처음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자연스레 전시장의 작품 구성은 내가 새로운 감정을 만나 그것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경험에 대해, 그리고 비로소 해소되는 과정으로 꾸며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여러분들이 제 복잡한 마음 동굴 속에 들어와 저의 혼란한 감정의 통로를 지나, 그 끝에 다다라서는 무언가 해소되는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낭만적인 상상을 하였더랍니다.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해소되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부디 바쁘신 일과 중에 잠시나마 제가 마련한 동굴 속에서 머물며 한숨 푹 쉬었다가 가셨으면 좋겠다-하는 바램입니다.

전시는 2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작품은

<마음동굴 / My own cave>, 193.9 x 130.3 cm, Ink and acrylic on Korean paper, 2025

<홀로 / Black hole>, 42 x 68 cm, Ink on Korean paper, 2018

<동굴동굴 / You are (a) mine>, 42 x 29.7 cm, 종이에 펜, 마커, Pigment liner and marker on paper, 2011

마음동굴 사진: 이준호, 스페이스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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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onths ago

전시가 막바지를 향해갑니다. 어느 전시나 준비하는 동안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관람객들이 내 그림에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정성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어떡하지, 계획한 작업을 완성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을 알면서도 ‘하겠습니다. 할게요.’ 하는 것은, 그래도 그 끝에 다다르면 무언가 소중한 깨달음이 남겠지-하는 기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나에게 동굴의 이미지란, 입구가 좁고 끝이 막다른 곳이어서 안전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그런 피난처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난처한 상황이 되면 곧잘 숨어버리는 그런 심리적 동굴이랄까요.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숨어있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로, 동굴은 나에게 은신처라기보다, 어릴 적 다락방 같은 느낌으로 변해온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어린 날의 나와의 연결성을 느끼고 나의 내면을 마주하며 자신을 위로하고 안전한 기분을 되찾아 다시 어른들이 계시는 따뜻한 안방으로, 거실로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그런 따뜻한 공간 말입니다.

전시를 하기로 결정한 지난가을 어느 날, 검게 칠해진 전시장에 들어서니, 마치 아직 탐사가 끝나지 않은 동굴에 들어선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시장 끝으로 다가갈수록 높아지는 천정은 감정을 고양되게 만들고 중간중간 새어 들어오는 빛은 공간에 신성하고 영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빈 전시장이어서 그랬는지 그와 동시에 막연한 설렘과 두려움마저 갖게 되더군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은 마치 내가 어떤 어려운 감정을 처음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자연스레 전시장의 작품 구성은 내가 새로운 감정을 만나 그것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경험에 대해, 그리고 비로소 해소되는 과정으로 꾸며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여러분들이 제 복잡한 마음 동굴 속에 들어와 저의 혼란한 감정의 통로를 지나, 그 끝에 다다라서는 무언가 해소되는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낭만적인 상상을 하였더랍니다.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해소되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부디 바쁘신 일과 중에 잠시나마 제가 마련한 동굴 속에서 머물며 한숨 푹 쉬었다가 가셨으면 좋겠다-하는 바램입니다.

전시는 2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작품은

<마음동굴 / My own cave>, 193.9 x 130.3 cm, Ink and acrylic on Korean paper, 2025

<홀로 / Black hole>, 42 x 68 cm, Ink on Korean paper, 2018

<동굴동굴 / You are (a) mine>, 42 x 29.7 cm, 종이에 펜, 마커, Pigment liner and marker on paper, 2011

마음동굴 사진: 이준호, 스페이스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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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 막바지를 향해갑니다. 어느 전시나 준비하는 동안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관람객들이 내 그림에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정성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어떡하지, 계획한 작업을 완성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을 알면서도 ‘하겠습니다. 할게요.’ 하는 것은, 그래도 그 끝에 다다르면 무언가 소중한 깨달음이 남겠지-하는 기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나에게 동굴의 이미지란, 입구가 좁고 끝이 막다른 곳이어서 안전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그런 피난처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난처한 상황이 되면 곧잘 숨어버리는 그런 심리적 동굴이랄까요.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숨어있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로, 동굴은 나에게 은신처라기보다, 어릴 적 다락방 같은 느낌으로 변해온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어린 날의 나와의 연결성을 느끼고 나의 내면을 마주하며 자신을 위로하고 안전한 기분을 되찾아 다시 어른들이 계시는 따뜻한 안방으로, 거실로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그런 따뜻한 공간 말입니다.

전시를 하기로 결정한 지난가을 어느 날, 검게 칠해진 전시장에 들어서니, 마치 아직 탐사가 끝나지 않은 동굴에 들어선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시장 끝으로 다가갈수록 높아지는 천정은 감정을 고양되게 만들고 중간중간 새어 들어오는 빛은 공간에 신성하고 영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빈 전시장이어서 그랬는지 그와 동시에 막연한 설렘과 두려움마저 갖게 되더군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은 마치 내가 어떤 어려운 감정을 처음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자연스레 전시장의 작품 구성은 내가 새로운 감정을 만나 그것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경험에 대해, 그리고 비로소 해소되는 과정으로 꾸며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여러분들이 제 복잡한 마음 동굴 속에 들어와 저의 혼란한 감정의 통로를 지나, 그 끝에 다다라서는 무언가 해소되는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낭만적인 상상을 하였더랍니다.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해소되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부디 바쁘신 일과 중에 잠시나마 제가 마련한 동굴 속에서 머물며 한숨 푹 쉬었다가 가셨으면 좋겠다-하는 바램입니다.

전시는 2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작품은

<마음동굴 / My own cave>, 193.9 x 130.3 cm, Ink and acrylic on Korean paper, 2025

<홀로 / Black hole>, 42 x 68 cm, Ink on Korean paper, 2018

<동굴동굴 / You are (a) mine>, 42 x 29.7 cm, 종이에 펜, 마커, Pigment liner and marker on paper, 2011

마음동굴 사진: 이준호, 스페이스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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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 막바지를 향해갑니다. 어느 전시나 준비하는 동안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관람객들이 내 그림에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정성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어떡하지, 계획한 작업을 완성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을 알면서도 ‘하겠습니다. 할게요.’ 하는 것은, 그래도 그 끝에 다다르면 무언가 소중한 깨달음이 남겠지-하는 기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나에게 동굴의 이미지란, 입구가 좁고 끝이 막다른 곳이어서 안전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그런 피난처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난처한 상황이 되면 곧잘 숨어버리는 그런 심리적 동굴이랄까요.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숨어있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로, 동굴은 나에게 은신처라기보다, 어릴 적 다락방 같은 느낌으로 변해온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어린 날의 나와의 연결성을 느끼고 나의 내면을 마주하며 자신을 위로하고 안전한 기분을 되찾아 다시 어른들이 계시는 따뜻한 안방으로, 거실로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그런 따뜻한 공간 말입니다.

전시를 하기로 결정한 지난가을 어느 날, 검게 칠해진 전시장에 들어서니, 마치 아직 탐사가 끝나지 않은 동굴에 들어선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시장 끝으로 다가갈수록 높아지는 천정은 감정을 고양되게 만들고 중간중간 새어 들어오는 빛은 공간에 신성하고 영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빈 전시장이어서 그랬는지 그와 동시에 막연한 설렘과 두려움마저 갖게 되더군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은 마치 내가 어떤 어려운 감정을 처음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자연스레 전시장의 작품 구성은 내가 새로운 감정을 만나 그것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경험에 대해, 그리고 비로소 해소되는 과정으로 꾸며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여러분들이 제 복잡한 마음 동굴 속에 들어와 저의 혼란한 감정의 통로를 지나, 그 끝에 다다라서는 무언가 해소되는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낭만적인 상상을 하였더랍니다.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해소되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부디 바쁘신 일과 중에 잠시나마 제가 마련한 동굴 속에서 머물며 한숨 푹 쉬었다가 가셨으면 좋겠다-하는 바램입니다.

전시는 2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작품은

<마음동굴 / My own cave>, 193.9 x 130.3 cm, Ink and acrylic on Korean paper, 2025

<홀로 / Black hole>, 42 x 68 cm, Ink on Korean paper, 2018

<동굴동굴 / You are (a) mine>, 42 x 29.7 cm, 종이에 펜, 마커, Pigment liner and marker on paper, 2011

마음동굴 사진: 이준호, 스페이스K 제공


2.4K
23
3 months ago

전시가 막바지를 향해갑니다. 어느 전시나 준비하는 동안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관람객들이 내 그림에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정성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어떡하지, 계획한 작업을 완성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을 알면서도 ‘하겠습니다. 할게요.’ 하는 것은, 그래도 그 끝에 다다르면 무언가 소중한 깨달음이 남겠지-하는 기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나에게 동굴의 이미지란, 입구가 좁고 끝이 막다른 곳이어서 안전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그런 피난처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난처한 상황이 되면 곧잘 숨어버리는 그런 심리적 동굴이랄까요.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숨어있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로, 동굴은 나에게 은신처라기보다, 어릴 적 다락방 같은 느낌으로 변해온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어린 날의 나와의 연결성을 느끼고 나의 내면을 마주하며 자신을 위로하고 안전한 기분을 되찾아 다시 어른들이 계시는 따뜻한 안방으로, 거실로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그런 따뜻한 공간 말입니다.

전시를 하기로 결정한 지난가을 어느 날, 검게 칠해진 전시장에 들어서니, 마치 아직 탐사가 끝나지 않은 동굴에 들어선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시장 끝으로 다가갈수록 높아지는 천정은 감정을 고양되게 만들고 중간중간 새어 들어오는 빛은 공간에 신성하고 영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빈 전시장이어서 그랬는지 그와 동시에 막연한 설렘과 두려움마저 갖게 되더군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은 마치 내가 어떤 어려운 감정을 처음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자연스레 전시장의 작품 구성은 내가 새로운 감정을 만나 그것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경험에 대해, 그리고 비로소 해소되는 과정으로 꾸며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여러분들이 제 복잡한 마음 동굴 속에 들어와 저의 혼란한 감정의 통로를 지나, 그 끝에 다다라서는 무언가 해소되는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낭만적인 상상을 하였더랍니다.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해소되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부디 바쁘신 일과 중에 잠시나마 제가 마련한 동굴 속에서 머물며 한숨 푹 쉬었다가 가셨으면 좋겠다-하는 바램입니다.

전시는 2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작품은

<마음동굴 / My own cave>, 193.9 x 130.3 cm, Ink and acrylic on Korean paper, 2025

<홀로 / Black hole>, 42 x 68 cm, Ink on Korean paper, 2018

<동굴동굴 / You are (a) mine>, 42 x 29.7 cm, 종이에 펜, 마커, Pigment liner and marker on paper, 2011

마음동굴 사진: 이준호, 스페이스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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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3 months ago

전시가 막바지를 향해갑니다. 어느 전시나 준비하는 동안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관람객들이 내 그림에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정성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어떡하지, 계획한 작업을 완성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을 알면서도 ‘하겠습니다. 할게요.’ 하는 것은, 그래도 그 끝에 다다르면 무언가 소중한 깨달음이 남겠지-하는 기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나에게 동굴의 이미지란, 입구가 좁고 끝이 막다른 곳이어서 안전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그런 피난처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난처한 상황이 되면 곧잘 숨어버리는 그런 심리적 동굴이랄까요.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숨어있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로, 동굴은 나에게 은신처라기보다, 어릴 적 다락방 같은 느낌으로 변해온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어린 날의 나와의 연결성을 느끼고 나의 내면을 마주하며 자신을 위로하고 안전한 기분을 되찾아 다시 어른들이 계시는 따뜻한 안방으로, 거실로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그런 따뜻한 공간 말입니다.

전시를 하기로 결정한 지난가을 어느 날, 검게 칠해진 전시장에 들어서니, 마치 아직 탐사가 끝나지 않은 동굴에 들어선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시장 끝으로 다가갈수록 높아지는 천정은 감정을 고양되게 만들고 중간중간 새어 들어오는 빛은 공간에 신성하고 영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빈 전시장이어서 그랬는지 그와 동시에 막연한 설렘과 두려움마저 갖게 되더군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은 마치 내가 어떤 어려운 감정을 처음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자연스레 전시장의 작품 구성은 내가 새로운 감정을 만나 그것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경험에 대해, 그리고 비로소 해소되는 과정으로 꾸며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여러분들이 제 복잡한 마음 동굴 속에 들어와 저의 혼란한 감정의 통로를 지나, 그 끝에 다다라서는 무언가 해소되는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낭만적인 상상을 하였더랍니다.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해소되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부디 바쁘신 일과 중에 잠시나마 제가 마련한 동굴 속에서 머물며 한숨 푹 쉬었다가 가셨으면 좋겠다-하는 바램입니다.

전시는 2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작품은

<마음동굴 / My own cave>, 193.9 x 130.3 cm, Ink and acrylic on Korean paper, 2025

<홀로 / Black hole>, 42 x 68 cm, Ink on Korean paper, 2018

<동굴동굴 / You are (a) mine>, 42 x 29.7 cm, 종이에 펜, 마커, Pigment liner and marker on paper, 2011

마음동굴 사진: 이준호, 스페이스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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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 막바지를 향해갑니다. 어느 전시나 준비하는 동안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관람객들이 내 그림에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정성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어떡하지, 계획한 작업을 완성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을 알면서도 ‘하겠습니다. 할게요.’ 하는 것은, 그래도 그 끝에 다다르면 무언가 소중한 깨달음이 남겠지-하는 기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나에게 동굴의 이미지란, 입구가 좁고 끝이 막다른 곳이어서 안전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그런 피난처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난처한 상황이 되면 곧잘 숨어버리는 그런 심리적 동굴이랄까요.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숨어있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로, 동굴은 나에게 은신처라기보다, 어릴 적 다락방 같은 느낌으로 변해온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어린 날의 나와의 연결성을 느끼고 나의 내면을 마주하며 자신을 위로하고 안전한 기분을 되찾아 다시 어른들이 계시는 따뜻한 안방으로, 거실로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그런 따뜻한 공간 말입니다.

전시를 하기로 결정한 지난가을 어느 날, 검게 칠해진 전시장에 들어서니, 마치 아직 탐사가 끝나지 않은 동굴에 들어선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시장 끝으로 다가갈수록 높아지는 천정은 감정을 고양되게 만들고 중간중간 새어 들어오는 빛은 공간에 신성하고 영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빈 전시장이어서 그랬는지 그와 동시에 막연한 설렘과 두려움마저 갖게 되더군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은 마치 내가 어떤 어려운 감정을 처음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자연스레 전시장의 작품 구성은 내가 새로운 감정을 만나 그것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경험에 대해, 그리고 비로소 해소되는 과정으로 꾸며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여러분들이 제 복잡한 마음 동굴 속에 들어와 저의 혼란한 감정의 통로를 지나, 그 끝에 다다라서는 무언가 해소되는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낭만적인 상상을 하였더랍니다.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해소되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부디 바쁘신 일과 중에 잠시나마 제가 마련한 동굴 속에서 머물며 한숨 푹 쉬었다가 가셨으면 좋겠다-하는 바램입니다.

전시는 2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작품은

<마음동굴 / My own cave>, 193.9 x 130.3 cm, Ink and acrylic on Korean paper, 2025

<홀로 / Black hole>, 42 x 68 cm, Ink on Korean paper, 2018

<동굴동굴 / You are (a) mine>, 42 x 29.7 cm, 종이에 펜, 마커, Pigment liner and marker on paper, 2011

마음동굴 사진: 이준호, 스페이스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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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3 months ago

<마음을 담아 / 고사관수도> 그림에 부치는 글.

*
나의 마음속에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일입니다. 감정이 이는 순간 마치 늘 지나던 곳에서 길을 잃는 것처럼 당황하게 되고, 곧 쏟아질 것 같은 찰랑이는 무언가를 갑자기 손에 쥐게 된 것처럼 하던 일을 멈추고 머뭇거리게 됩니다. 감정이라는 것을 품게 되면 눈 감고도 척척 해낼 수 있던 일도 갑자기 손에 잡히지 않게 됩니다. 그 감정이 생소하면 생소할수록, 더 많이 주저하게 되고 더 오래 멈추어 서게 됩니다. 감정은 기계적으로 잘 살아가던 나에게 고장을 일으킵니다. 그 순간 당신이 내 옆에 있다면 아마 아무 잘못이 없는 당신마저 장애를 갖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곳에서, 나 자신과 당신을 멈추어 세울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힘입니다.

**
어떠한 감정은 거의 몸에 생채기를 내는 것과 같아서, 아얏!하고 비명을 지르게 할 만큼 아프기도 합니다. 멀쩡히 길을 걷다가 갑자기 어딘가 아프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어디서 돌이라도 날아온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처럼, 어떤 감정이 일면 그것이 내면에서 떠오른 무엇이라고 여기기보다, 누가 그 감정을 던진 것인지부터 찾게 됩니다. 그것이 기쁜 감정이라면 타인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그에게 덕을 돌려줄 수 있으니 좋은 일처럼 느껴지고, 그것이 고통스러운 감정이라면, 타인에게 그 탓을 할 수 있으니 당장에 편리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쁜 감정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가 사라지면 기쁨도 함께 사라져 버릴까봐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이며, 슬픈 감정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남아있는 슬픔의 원인을 이해할 수 없어 불안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러나저러나 감정의 원인을 나의 외부, 타인에게서 찾는 일은 결과적으로 불안이라는 또다른 불 편한 감정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감정이 다가왔을 때, 그것이 틀림없이 나에게서 왔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여러모로 나은 일입니다.

***
그렇게 감정의 기원을 알아가는 과정은 마치 수면 위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모습을 붙잡으려 손을 뻗으면 그 모습에 닿을 때마다 일그러지기만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일은, 그저 고개를 숙여 나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것처럼 쉬운 일 같으면서도 나의 몸의 안쪽으로 눈알을 돌려 바라보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욕망으로 가득 차 비뚤어진 나의 모습, 바닥에 드러누워 추태를 부리는 나의 모습,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악당의 면모들이 나에게서도 발견될 수 있음을 받아들일수 있어야 할것입니다.

****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기 어려울 때, 나는 어른스럽지 않고, 이기적이며, 유아적인 나의 모습조차 받아들이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어떤 존재를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그는 나의 모든 과거를 아는 나머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내 모든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봅니다. 그에게 나의 감정을 들려주고 나는 비로소 그 감정 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어떤 존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의 모든 결점들을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오래된, 자애로운 어떤 스승을 떠올릴 수 있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나에게 어떤 감정이 다가오든 나는 그것을 찬찬히 바라보고 받아들인 다음, 내 안의 스승께 온마음을 담아 떠나보낼 것입니다. 그러면 조금 더 편안하게 오래도록 당신과 함께 앉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작품1.
<마음을 담아 / Sincerely>, 한지에 먹, 700 x 140 cm, 2025

작품2.
<고사관수도 / Gentle giant in my mind>, 모시에 디지털인쇄, 360 x 360 cm, 2025

음악: <chant> - @twelvesounds project

사진: 이준호, 스페이스K 제공


1.9K
26
4 months ago

<마음을 담아 / 고사관수도> 그림에 부치는 글.

*
나의 마음속에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일입니다. 감정이 이는 순간 마치 늘 지나던 곳에서 길을 잃는 것처럼 당황하게 되고, 곧 쏟아질 것 같은 찰랑이는 무언가를 갑자기 손에 쥐게 된 것처럼 하던 일을 멈추고 머뭇거리게 됩니다. 감정이라는 것을 품게 되면 눈 감고도 척척 해낼 수 있던 일도 갑자기 손에 잡히지 않게 됩니다. 그 감정이 생소하면 생소할수록, 더 많이 주저하게 되고 더 오래 멈추어 서게 됩니다. 감정은 기계적으로 잘 살아가던 나에게 고장을 일으킵니다. 그 순간 당신이 내 옆에 있다면 아마 아무 잘못이 없는 당신마저 장애를 갖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곳에서, 나 자신과 당신을 멈추어 세울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힘입니다.

**
어떠한 감정은 거의 몸에 생채기를 내는 것과 같아서, 아얏!하고 비명을 지르게 할 만큼 아프기도 합니다. 멀쩡히 길을 걷다가 갑자기 어딘가 아프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어디서 돌이라도 날아온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처럼, 어떤 감정이 일면 그것이 내면에서 떠오른 무엇이라고 여기기보다, 누가 그 감정을 던진 것인지부터 찾게 됩니다. 그것이 기쁜 감정이라면 타인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그에게 덕을 돌려줄 수 있으니 좋은 일처럼 느껴지고, 그것이 고통스러운 감정이라면, 타인에게 그 탓을 할 수 있으니 당장에 편리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쁜 감정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가 사라지면 기쁨도 함께 사라져 버릴까봐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이며, 슬픈 감정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남아있는 슬픔의 원인을 이해할 수 없어 불안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러나저러나 감정의 원인을 나의 외부, 타인에게서 찾는 일은 결과적으로 불안이라는 또다른 불 편한 감정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감정이 다가왔을 때, 그것이 틀림없이 나에게서 왔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여러모로 나은 일입니다.

***
그렇게 감정의 기원을 알아가는 과정은 마치 수면 위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모습을 붙잡으려 손을 뻗으면 그 모습에 닿을 때마다 일그러지기만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일은, 그저 고개를 숙여 나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것처럼 쉬운 일 같으면서도 나의 몸의 안쪽으로 눈알을 돌려 바라보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욕망으로 가득 차 비뚤어진 나의 모습, 바닥에 드러누워 추태를 부리는 나의 모습,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악당의 면모들이 나에게서도 발견될 수 있음을 받아들일수 있어야 할것입니다.

****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기 어려울 때, 나는 어른스럽지 않고, 이기적이며, 유아적인 나의 모습조차 받아들이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어떤 존재를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그는 나의 모든 과거를 아는 나머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내 모든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봅니다. 그에게 나의 감정을 들려주고 나는 비로소 그 감정 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어떤 존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의 모든 결점들을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오래된, 자애로운 어떤 스승을 떠올릴 수 있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나에게 어떤 감정이 다가오든 나는 그것을 찬찬히 바라보고 받아들인 다음, 내 안의 스승께 온마음을 담아 떠나보낼 것입니다. 그러면 조금 더 편안하게 오래도록 당신과 함께 앉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작품1.
<마음을 담아 / Sincerely>, 한지에 먹, 700 x 140 cm, 2025

작품2.
<고사관수도 / Gentle giant in my mind>, 모시에 디지털인쇄, 360 x 360 cm, 2025

음악: <chant> - @twelvesounds project

사진: 이준호, 스페이스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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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담아 / 고사관수도> 그림에 부치는 글.

*
나의 마음속에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일입니다. 감정이 이는 순간 마치 늘 지나던 곳에서 길을 잃는 것처럼 당황하게 되고, 곧 쏟아질 것 같은 찰랑이는 무언가를 갑자기 손에 쥐게 된 것처럼 하던 일을 멈추고 머뭇거리게 됩니다. 감정이라는 것을 품게 되면 눈 감고도 척척 해낼 수 있던 일도 갑자기 손에 잡히지 않게 됩니다. 그 감정이 생소하면 생소할수록, 더 많이 주저하게 되고 더 오래 멈추어 서게 됩니다. 감정은 기계적으로 잘 살아가던 나에게 고장을 일으킵니다. 그 순간 당신이 내 옆에 있다면 아마 아무 잘못이 없는 당신마저 장애를 갖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곳에서, 나 자신과 당신을 멈추어 세울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힘입니다.

**
어떠한 감정은 거의 몸에 생채기를 내는 것과 같아서, 아얏!하고 비명을 지르게 할 만큼 아프기도 합니다. 멀쩡히 길을 걷다가 갑자기 어딘가 아프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어디서 돌이라도 날아온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처럼, 어떤 감정이 일면 그것이 내면에서 떠오른 무엇이라고 여기기보다, 누가 그 감정을 던진 것인지부터 찾게 됩니다. 그것이 기쁜 감정이라면 타인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그에게 덕을 돌려줄 수 있으니 좋은 일처럼 느껴지고, 그것이 고통스러운 감정이라면, 타인에게 그 탓을 할 수 있으니 당장에 편리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쁜 감정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가 사라지면 기쁨도 함께 사라져 버릴까봐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이며, 슬픈 감정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남아있는 슬픔의 원인을 이해할 수 없어 불안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러나저러나 감정의 원인을 나의 외부, 타인에게서 찾는 일은 결과적으로 불안이라는 또다른 불 편한 감정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감정이 다가왔을 때, 그것이 틀림없이 나에게서 왔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여러모로 나은 일입니다.

***
그렇게 감정의 기원을 알아가는 과정은 마치 수면 위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모습을 붙잡으려 손을 뻗으면 그 모습에 닿을 때마다 일그러지기만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일은, 그저 고개를 숙여 나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것처럼 쉬운 일 같으면서도 나의 몸의 안쪽으로 눈알을 돌려 바라보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욕망으로 가득 차 비뚤어진 나의 모습, 바닥에 드러누워 추태를 부리는 나의 모습,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악당의 면모들이 나에게서도 발견될 수 있음을 받아들일수 있어야 할것입니다.

****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기 어려울 때, 나는 어른스럽지 않고, 이기적이며, 유아적인 나의 모습조차 받아들이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어떤 존재를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그는 나의 모든 과거를 아는 나머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내 모든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봅니다. 그에게 나의 감정을 들려주고 나는 비로소 그 감정 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어떤 존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의 모든 결점들을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오래된, 자애로운 어떤 스승을 떠올릴 수 있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나에게 어떤 감정이 다가오든 나는 그것을 찬찬히 바라보고 받아들인 다음, 내 안의 스승께 온마음을 담아 떠나보낼 것입니다. 그러면 조금 더 편안하게 오래도록 당신과 함께 앉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작품1.
<마음을 담아 / Sincerely>, 한지에 먹, 700 x 140 cm, 2025

작품2.
<고사관수도 / Gentle giant in my mind>, 모시에 디지털인쇄, 360 x 360 cm, 2025

음악: <chant> - @twelvesounds project

사진: 이준호, 스페이스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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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담아 / 고사관수도> 그림에 부치는 글.

*
나의 마음속에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일입니다. 감정이 이는 순간 마치 늘 지나던 곳에서 길을 잃는 것처럼 당황하게 되고, 곧 쏟아질 것 같은 찰랑이는 무언가를 갑자기 손에 쥐게 된 것처럼 하던 일을 멈추고 머뭇거리게 됩니다. 감정이라는 것을 품게 되면 눈 감고도 척척 해낼 수 있던 일도 갑자기 손에 잡히지 않게 됩니다. 그 감정이 생소하면 생소할수록, 더 많이 주저하게 되고 더 오래 멈추어 서게 됩니다. 감정은 기계적으로 잘 살아가던 나에게 고장을 일으킵니다. 그 순간 당신이 내 옆에 있다면 아마 아무 잘못이 없는 당신마저 장애를 갖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곳에서, 나 자신과 당신을 멈추어 세울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힘입니다.

**
어떠한 감정은 거의 몸에 생채기를 내는 것과 같아서, 아얏!하고 비명을 지르게 할 만큼 아프기도 합니다. 멀쩡히 길을 걷다가 갑자기 어딘가 아프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어디서 돌이라도 날아온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처럼, 어떤 감정이 일면 그것이 내면에서 떠오른 무엇이라고 여기기보다, 누가 그 감정을 던진 것인지부터 찾게 됩니다. 그것이 기쁜 감정이라면 타인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그에게 덕을 돌려줄 수 있으니 좋은 일처럼 느껴지고, 그것이 고통스러운 감정이라면, 타인에게 그 탓을 할 수 있으니 당장에 편리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쁜 감정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가 사라지면 기쁨도 함께 사라져 버릴까봐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이며, 슬픈 감정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남아있는 슬픔의 원인을 이해할 수 없어 불안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러나저러나 감정의 원인을 나의 외부, 타인에게서 찾는 일은 결과적으로 불안이라는 또다른 불 편한 감정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감정이 다가왔을 때, 그것이 틀림없이 나에게서 왔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여러모로 나은 일입니다.

***
그렇게 감정의 기원을 알아가는 과정은 마치 수면 위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모습을 붙잡으려 손을 뻗으면 그 모습에 닿을 때마다 일그러지기만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일은, 그저 고개를 숙여 나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것처럼 쉬운 일 같으면서도 나의 몸의 안쪽으로 눈알을 돌려 바라보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욕망으로 가득 차 비뚤어진 나의 모습, 바닥에 드러누워 추태를 부리는 나의 모습,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악당의 면모들이 나에게서도 발견될 수 있음을 받아들일수 있어야 할것입니다.

****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기 어려울 때, 나는 어른스럽지 않고, 이기적이며, 유아적인 나의 모습조차 받아들이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어떤 존재를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그는 나의 모든 과거를 아는 나머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내 모든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봅니다. 그에게 나의 감정을 들려주고 나는 비로소 그 감정 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어떤 존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의 모든 결점들을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오래된, 자애로운 어떤 스승을 떠올릴 수 있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나에게 어떤 감정이 다가오든 나는 그것을 찬찬히 바라보고 받아들인 다음, 내 안의 스승께 온마음을 담아 떠나보낼 것입니다. 그러면 조금 더 편안하게 오래도록 당신과 함께 앉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작품1.
<마음을 담아 / Sincerely>, 한지에 먹, 700 x 140 cm, 2025

작품2.
<고사관수도 / Gentle giant in my mind>, 모시에 디지털인쇄, 360 x 360 cm, 2025

음악: <chant> - @twelvesounds project

사진: 이준호, 스페이스K 제공


1.9K
26
4 months ago

<마음을 담아 / 고사관수도> 그림에 부치는 글.

*
나의 마음속에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일입니다. 감정이 이는 순간 마치 늘 지나던 곳에서 길을 잃는 것처럼 당황하게 되고, 곧 쏟아질 것 같은 찰랑이는 무언가를 갑자기 손에 쥐게 된 것처럼 하던 일을 멈추고 머뭇거리게 됩니다. 감정이라는 것을 품게 되면 눈 감고도 척척 해낼 수 있던 일도 갑자기 손에 잡히지 않게 됩니다. 그 감정이 생소하면 생소할수록, 더 많이 주저하게 되고 더 오래 멈추어 서게 됩니다. 감정은 기계적으로 잘 살아가던 나에게 고장을 일으킵니다. 그 순간 당신이 내 옆에 있다면 아마 아무 잘못이 없는 당신마저 장애를 갖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곳에서, 나 자신과 당신을 멈추어 세울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힘입니다.

**
어떠한 감정은 거의 몸에 생채기를 내는 것과 같아서, 아얏!하고 비명을 지르게 할 만큼 아프기도 합니다. 멀쩡히 길을 걷다가 갑자기 어딘가 아프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어디서 돌이라도 날아온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처럼, 어떤 감정이 일면 그것이 내면에서 떠오른 무엇이라고 여기기보다, 누가 그 감정을 던진 것인지부터 찾게 됩니다. 그것이 기쁜 감정이라면 타인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그에게 덕을 돌려줄 수 있으니 좋은 일처럼 느껴지고, 그것이 고통스러운 감정이라면, 타인에게 그 탓을 할 수 있으니 당장에 편리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쁜 감정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가 사라지면 기쁨도 함께 사라져 버릴까봐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이며, 슬픈 감정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남아있는 슬픔의 원인을 이해할 수 없어 불안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러나저러나 감정의 원인을 나의 외부, 타인에게서 찾는 일은 결과적으로 불안이라는 또다른 불 편한 감정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감정이 다가왔을 때, 그것이 틀림없이 나에게서 왔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여러모로 나은 일입니다.

***
그렇게 감정의 기원을 알아가는 과정은 마치 수면 위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모습을 붙잡으려 손을 뻗으면 그 모습에 닿을 때마다 일그러지기만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일은, 그저 고개를 숙여 나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것처럼 쉬운 일 같으면서도 나의 몸의 안쪽으로 눈알을 돌려 바라보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욕망으로 가득 차 비뚤어진 나의 모습, 바닥에 드러누워 추태를 부리는 나의 모습,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악당의 면모들이 나에게서도 발견될 수 있음을 받아들일수 있어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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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기 어려울 때, 나는 어른스럽지 않고, 이기적이며, 유아적인 나의 모습조차 받아들이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어떤 존재를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그는 나의 모든 과거를 아는 나머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내 모든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봅니다. 그에게 나의 감정을 들려주고 나는 비로소 그 감정 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어떤 존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의 모든 결점들을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오래된, 자애로운 어떤 스승을 떠올릴 수 있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나에게 어떤 감정이 다가오든 나는 그것을 찬찬히 바라보고 받아들인 다음, 내 안의 스승께 온마음을 담아 떠나보낼 것입니다. 그러면 조금 더 편안하게 오래도록 당신과 함께 앉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작품1.
<마음을 담아 / Sincerely>, 한지에 먹, 700 x 140 cm, 2025

작품2.
<고사관수도 / Gentle giant in my mind>, 모시에 디지털인쇄, 360 x 360 cm, 2025

음악: <chant> - @twelvesounds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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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담아 / 고사관수도> 그림에 부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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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속에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일입니다. 감정이 이는 순간 마치 늘 지나던 곳에서 길을 잃는 것처럼 당황하게 되고, 곧 쏟아질 것 같은 찰랑이는 무언가를 갑자기 손에 쥐게 된 것처럼 하던 일을 멈추고 머뭇거리게 됩니다. 감정이라는 것을 품게 되면 눈 감고도 척척 해낼 수 있던 일도 갑자기 손에 잡히지 않게 됩니다. 그 감정이 생소하면 생소할수록, 더 많이 주저하게 되고 더 오래 멈추어 서게 됩니다. 감정은 기계적으로 잘 살아가던 나에게 고장을 일으킵니다. 그 순간 당신이 내 옆에 있다면 아마 아무 잘못이 없는 당신마저 장애를 갖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곳에서, 나 자신과 당신을 멈추어 세울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힘입니다.

**
어떠한 감정은 거의 몸에 생채기를 내는 것과 같아서, 아얏!하고 비명을 지르게 할 만큼 아프기도 합니다. 멀쩡히 길을 걷다가 갑자기 어딘가 아프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어디서 돌이라도 날아온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처럼, 어떤 감정이 일면 그것이 내면에서 떠오른 무엇이라고 여기기보다, 누가 그 감정을 던진 것인지부터 찾게 됩니다. 그것이 기쁜 감정이라면 타인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그에게 덕을 돌려줄 수 있으니 좋은 일처럼 느껴지고, 그것이 고통스러운 감정이라면, 타인에게 그 탓을 할 수 있으니 당장에 편리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쁜 감정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가 사라지면 기쁨도 함께 사라져 버릴까봐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이며, 슬픈 감정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남아있는 슬픔의 원인을 이해할 수 없어 불안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러나저러나 감정의 원인을 나의 외부, 타인에게서 찾는 일은 결과적으로 불안이라는 또다른 불 편한 감정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감정이 다가왔을 때, 그것이 틀림없이 나에게서 왔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여러모로 나은 일입니다.

***
그렇게 감정의 기원을 알아가는 과정은 마치 수면 위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모습을 붙잡으려 손을 뻗으면 그 모습에 닿을 때마다 일그러지기만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일은, 그저 고개를 숙여 나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것처럼 쉬운 일 같으면서도 나의 몸의 안쪽으로 눈알을 돌려 바라보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욕망으로 가득 차 비뚤어진 나의 모습, 바닥에 드러누워 추태를 부리는 나의 모습,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악당의 면모들이 나에게서도 발견될 수 있음을 받아들일수 있어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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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기 어려울 때, 나는 어른스럽지 않고, 이기적이며, 유아적인 나의 모습조차 받아들이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어떤 존재를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그는 나의 모든 과거를 아는 나머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내 모든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봅니다. 그에게 나의 감정을 들려주고 나는 비로소 그 감정 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어떤 존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의 모든 결점들을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오래된, 자애로운 어떤 스승을 떠올릴 수 있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나에게 어떤 감정이 다가오든 나는 그것을 찬찬히 바라보고 받아들인 다음, 내 안의 스승께 온마음을 담아 떠나보낼 것입니다. 그러면 조금 더 편안하게 오래도록 당신과 함께 앉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작품1.
<마음을 담아 / Sincerely>, 한지에 먹, 700 x 140 cm, 2025

작품2.
<고사관수도 / Gentle giant in my mind>, 모시에 디지털인쇄, 360 x 360 cm,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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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담아 / 고사관수도> 그림에 부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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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속에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일입니다. 감정이 이는 순간 마치 늘 지나던 곳에서 길을 잃는 것처럼 당황하게 되고, 곧 쏟아질 것 같은 찰랑이는 무언가를 갑자기 손에 쥐게 된 것처럼 하던 일을 멈추고 머뭇거리게 됩니다. 감정이라는 것을 품게 되면 눈 감고도 척척 해낼 수 있던 일도 갑자기 손에 잡히지 않게 됩니다. 그 감정이 생소하면 생소할수록, 더 많이 주저하게 되고 더 오래 멈추어 서게 됩니다. 감정은 기계적으로 잘 살아가던 나에게 고장을 일으킵니다. 그 순간 당신이 내 옆에 있다면 아마 아무 잘못이 없는 당신마저 장애를 갖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곳에서, 나 자신과 당신을 멈추어 세울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힘입니다.

**
어떠한 감정은 거의 몸에 생채기를 내는 것과 같아서, 아얏!하고 비명을 지르게 할 만큼 아프기도 합니다. 멀쩡히 길을 걷다가 갑자기 어딘가 아프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어디서 돌이라도 날아온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처럼, 어떤 감정이 일면 그것이 내면에서 떠오른 무엇이라고 여기기보다, 누가 그 감정을 던진 것인지부터 찾게 됩니다. 그것이 기쁜 감정이라면 타인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그에게 덕을 돌려줄 수 있으니 좋은 일처럼 느껴지고, 그것이 고통스러운 감정이라면, 타인에게 그 탓을 할 수 있으니 당장에 편리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쁜 감정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가 사라지면 기쁨도 함께 사라져 버릴까봐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이며, 슬픈 감정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남아있는 슬픔의 원인을 이해할 수 없어 불안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러나저러나 감정의 원인을 나의 외부, 타인에게서 찾는 일은 결과적으로 불안이라는 또다른 불 편한 감정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감정이 다가왔을 때, 그것이 틀림없이 나에게서 왔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여러모로 나은 일입니다.

***
그렇게 감정의 기원을 알아가는 과정은 마치 수면 위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모습을 붙잡으려 손을 뻗으면 그 모습에 닿을 때마다 일그러지기만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일은, 그저 고개를 숙여 나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것처럼 쉬운 일 같으면서도 나의 몸의 안쪽으로 눈알을 돌려 바라보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욕망으로 가득 차 비뚤어진 나의 모습, 바닥에 드러누워 추태를 부리는 나의 모습,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악당의 면모들이 나에게서도 발견될 수 있음을 받아들일수 있어야 할것입니다.

****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기 어려울 때, 나는 어른스럽지 않고, 이기적이며, 유아적인 나의 모습조차 받아들이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어떤 존재를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그는 나의 모든 과거를 아는 나머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내 모든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봅니다. 그에게 나의 감정을 들려주고 나는 비로소 그 감정 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어떤 존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의 모든 결점들을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오래된, 자애로운 어떤 스승을 떠올릴 수 있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나에게 어떤 감정이 다가오든 나는 그것을 찬찬히 바라보고 받아들인 다음, 내 안의 스승께 온마음을 담아 떠나보낼 것입니다. 그러면 조금 더 편안하게 오래도록 당신과 함께 앉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작품1.
<마음을 담아 / Sincerely>, 한지에 먹, 700 x 140 cm, 2025

작품2.
<고사관수도 / Gentle giant in my mind>, 모시에 디지털인쇄, 360 x 360 cm,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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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속에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일입니다. 감정이 이는 순간 마치 늘 지나던 곳에서 길을 잃는 것처럼 당황하게 되고, 곧 쏟아질 것 같은 찰랑이는 무언가를 갑자기 손에 쥐게 된 것처럼 하던 일을 멈추고 머뭇거리게 됩니다. 감정이라는 것을 품게 되면 눈 감고도 척척 해낼 수 있던 일도 갑자기 손에 잡히지 않게 됩니다. 그 감정이 생소하면 생소할수록, 더 많이 주저하게 되고 더 오래 멈추어 서게 됩니다. 감정은 기계적으로 잘 살아가던 나에게 고장을 일으킵니다. 그 순간 당신이 내 옆에 있다면 아마 아무 잘못이 없는 당신마저 장애를 갖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곳에서, 나 자신과 당신을 멈추어 세울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힘입니다.

**
어떠한 감정은 거의 몸에 생채기를 내는 것과 같아서, 아얏!하고 비명을 지르게 할 만큼 아프기도 합니다. 멀쩡히 길을 걷다가 갑자기 어딘가 아프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어디서 돌이라도 날아온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처럼, 어떤 감정이 일면 그것이 내면에서 떠오른 무엇이라고 여기기보다, 누가 그 감정을 던진 것인지부터 찾게 됩니다. 그것이 기쁜 감정이라면 타인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그에게 덕을 돌려줄 수 있으니 좋은 일처럼 느껴지고, 그것이 고통스러운 감정이라면, 타인에게 그 탓을 할 수 있으니 당장에 편리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쁜 감정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가 사라지면 기쁨도 함께 사라져 버릴까봐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이며, 슬픈 감정이 타인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남아있는 슬픔의 원인을 이해할 수 없어 불안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러나저러나 감정의 원인을 나의 외부, 타인에게서 찾는 일은 결과적으로 불안이라는 또다른 불 편한 감정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감정이 다가왔을 때, 그것이 틀림없이 나에게서 왔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여러모로 나은 일입니다.

***
그렇게 감정의 기원을 알아가는 과정은 마치 수면 위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모습을 붙잡으려 손을 뻗으면 그 모습에 닿을 때마다 일그러지기만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일은, 그저 고개를 숙여 나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것처럼 쉬운 일 같으면서도 나의 몸의 안쪽으로 눈알을 돌려 바라보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욕망으로 가득 차 비뚤어진 나의 모습, 바닥에 드러누워 추태를 부리는 나의 모습,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악당의 면모들이 나에게서도 발견될 수 있음을 받아들일수 있어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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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기 어려울 때, 나는 어른스럽지 않고, 이기적이며, 유아적인 나의 모습조차 받아들이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어떤 존재를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그는 나의 모든 과거를 아는 나머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내 모든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봅니다. 그에게 나의 감정을 들려주고 나는 비로소 그 감정 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어떤 존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의 모든 결점들을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오래된, 자애로운 어떤 스승을 떠올릴 수 있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나에게 어떤 감정이 다가오든 나는 그것을 찬찬히 바라보고 받아들인 다음, 내 안의 스승께 온마음을 담아 떠나보낼 것입니다. 그러면 조금 더 편안하게 오래도록 당신과 함께 앉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작품1.
<마음을 담아 / Sincerely>, 한지에 먹, 700 x 140 cm, 2025

작품2.
<고사관수도 / Gentle giant in my mind>, 모시에 디지털인쇄, 360 x 360 cm,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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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 동안, 정말 이상하리만치 이곳저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베를린에서, 런던에서, 뉴욕에서, 파리에서도, 양주 작업실에서도, 잠실 갤러리에서도, 미술관에서도, 프랑스 시골 마을 헛간에서도, 우리 집에서도, 어머님 집에서도, 처갓집에서도, 남의 집 화장실에서도 그리고 또 그렸다. 수십 점의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와 함께 해 준 나의 작은 붓들, 나의 든든한 손가락, 나의 작은 동물 친구들, 그리고 동료 작가이자 아내, 화란에게 감사 인사를. 올 해도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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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months ago

지난 한 해 동안, 정말 이상하리만치 이곳저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베를린에서, 런던에서, 뉴욕에서, 파리에서도, 양주 작업실에서도, 잠실 갤러리에서도, 미술관에서도, 프랑스 시골 마을 헛간에서도, 우리 집에서도, 어머님 집에서도, 처갓집에서도, 남의 집 화장실에서도 그리고 또 그렸다. 수십 점의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와 함께 해 준 나의 작은 붓들, 나의 든든한 손가락, 나의 작은 동물 친구들, 그리고 동료 작가이자 아내, 화란에게 감사 인사를. 올 해도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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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 동안, 정말 이상하리만치 이곳저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베를린에서, 런던에서, 뉴욕에서, 파리에서도, 양주 작업실에서도, 잠실 갤러리에서도, 미술관에서도, 프랑스 시골 마을 헛간에서도, 우리 집에서도, 어머님 집에서도, 처갓집에서도, 남의 집 화장실에서도 그리고 또 그렸다. 수십 점의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와 함께 해 준 나의 작은 붓들, 나의 든든한 손가락, 나의 작은 동물 친구들, 그리고 동료 작가이자 아내, 화란에게 감사 인사를. 올 해도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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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months ago

내일부터 저의 개인전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가 스페이스K @spacek_korea 에서 열립니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이 전시 제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2009년에 열린 저의 첫 개인전 제목은 <없었던 것처럼 있고 싶다> 였습니다. 그로부터 1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지워지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흠모의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가 봅니다. 그때는 조용히 이 세계의 커튼 뒤에 숨어서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으며 관조하며 향유하고만 싶은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우리’ 같이 지워진다는 점이 달라졌달까요.

소복이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내린 풍경을 보러 뛰쳐나가곤 했습니다. 도시와 자연의 경계가, 우리집과 너희집의 경계가, 나와 나의 강아지와 나무 사이의 경계가, 나와 당신과의 경계가 사라지는 그 무경계의 풍경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토록 경계가 사라지는 풍경에 환호하는 이유는, 반대로 그 경계에 집착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와 내가 처한 세계의 경계면에서, 또 나와 당신의 경계면에서, 그것이 선명해지거나 흐릿해지는 과정에 인생의 모든 드라마가 펼쳐지고 온갖 감정이 솟아나고 사그라들기 때문입니다. 경계를 관찰하는 일은 그래서 요동치는 파도를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입니다. 우리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건 두려운 일인 동시에 또 자유로운 경험일 것입니다.

저의 마음속 동굴과도 같은 이 전시장에 방문하시어, 저의 그림과 함께 잠시나마 마음의 빗장을 풀고 경계를 지우는 경험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근래에 제작했던 크고 작은 작품들과, 처음 선보이는 큰 그림 여섯 점, 열 폭 병풍 작업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전시는 내년 2월 13일까지 진행됩니다. 저는 오픈일 12일에 전시장에 있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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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5 months ago

내일부터 저의 개인전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가 스페이스K @spacek_korea 에서 열립니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이 전시 제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2009년에 열린 저의 첫 개인전 제목은 <없었던 것처럼 있고 싶다> 였습니다. 그로부터 1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지워지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흠모의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가 봅니다. 그때는 조용히 이 세계의 커튼 뒤에 숨어서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으며 관조하며 향유하고만 싶은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우리’ 같이 지워진다는 점이 달라졌달까요.

소복이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내린 풍경을 보러 뛰쳐나가곤 했습니다. 도시와 자연의 경계가, 우리집과 너희집의 경계가, 나와 나의 강아지와 나무 사이의 경계가, 나와 당신과의 경계가 사라지는 그 무경계의 풍경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토록 경계가 사라지는 풍경에 환호하는 이유는, 반대로 그 경계에 집착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와 내가 처한 세계의 경계면에서, 또 나와 당신의 경계면에서, 그것이 선명해지거나 흐릿해지는 과정에 인생의 모든 드라마가 펼쳐지고 온갖 감정이 솟아나고 사그라들기 때문입니다. 경계를 관찰하는 일은 그래서 요동치는 파도를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입니다. 우리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건 두려운 일인 동시에 또 자유로운 경험일 것입니다.

저의 마음속 동굴과도 같은 이 전시장에 방문하시어, 저의 그림과 함께 잠시나마 마음의 빗장을 풀고 경계를 지우는 경험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근래에 제작했던 크고 작은 작품들과, 처음 선보이는 큰 그림 여섯 점, 열 폭 병풍 작업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전시는 내년 2월 13일까지 진행됩니다. 저는 오픈일 12일에 전시장에 있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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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저의 개인전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가 스페이스K @spacek_korea 에서 열립니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이 전시 제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2009년에 열린 저의 첫 개인전 제목은 <없었던 것처럼 있고 싶다> 였습니다. 그로부터 1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지워지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흠모의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가 봅니다. 그때는 조용히 이 세계의 커튼 뒤에 숨어서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으며 관조하며 향유하고만 싶은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우리’ 같이 지워진다는 점이 달라졌달까요.

소복이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내린 풍경을 보러 뛰쳐나가곤 했습니다. 도시와 자연의 경계가, 우리집과 너희집의 경계가, 나와 나의 강아지와 나무 사이의 경계가, 나와 당신과의 경계가 사라지는 그 무경계의 풍경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토록 경계가 사라지는 풍경에 환호하는 이유는, 반대로 그 경계에 집착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와 내가 처한 세계의 경계면에서, 또 나와 당신의 경계면에서, 그것이 선명해지거나 흐릿해지는 과정에 인생의 모든 드라마가 펼쳐지고 온갖 감정이 솟아나고 사그라들기 때문입니다. 경계를 관찰하는 일은 그래서 요동치는 파도를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입니다. 우리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건 두려운 일인 동시에 또 자유로운 경험일 것입니다.

저의 마음속 동굴과도 같은 이 전시장에 방문하시어, 저의 그림과 함께 잠시나마 마음의 빗장을 풀고 경계를 지우는 경험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근래에 제작했던 크고 작은 작품들과, 처음 선보이는 큰 그림 여섯 점, 열 폭 병풍 작업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전시는 내년 2월 13일까지 진행됩니다. 저는 오픈일 12일에 전시장에 있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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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열린 저의 첫 개인전 제목은 <없었던 것처럼 있고 싶다> 였습니다. 그로부터 1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지워지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흠모의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가 봅니다. 그때는 조용히 이 세계의 커튼 뒤에 숨어서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으며 관조하며 향유하고만 싶은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우리’ 같이 지워진다는 점이 달라졌달까요.

소복이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내린 풍경을 보러 뛰쳐나가곤 했습니다. 도시와 자연의 경계가, 우리집과 너희집의 경계가, 나와 나의 강아지와 나무 사이의 경계가, 나와 당신과의 경계가 사라지는 그 무경계의 풍경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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